김보만
金甫萬1896. 10. 10 ~ 1981. 3.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96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광생리(光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과 6일 정산면 시장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청양의 만세 운동은 홍범섭(洪梵燮)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홍범섭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상경하여 독립선언문을 구해 고향으로 돌아와서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권흥규(權興圭) 등과 독립선언문을 함께 읽고,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4월 5일 오후 3시가 되자, 시장에서 100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터 곳곳을 돌았다. 정산헌병주재소 헌병들이 해산을 명령하였고, 30여 명을 강제로 붙잡아 갔다. 15분 뒤 만세 시위 주도자들이 다시 시장으로 진입하여 700명의 군중에게 ‘독립 만세’를 외치자고 설득하였다. 군중은 끌려간 사람들을 구하러 주재소로 몰려들었고, 몽둥이 등을 휘두르며 헌병에 맞섰다. 이때 정산향교 직원 권흥규가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다가, 일본 헌병이 쏜 탄환에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다음 날인 4월 6일, 주민들은 헌병주재소에서 목면(木面) 자택으로 권흥규의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서, ‘일본 배척’과 ‘한국 독립’을 요구하는 만장을 내걸고 노제를 지냈다. 만세 운동 참여자와 문상객이 섞여 1,000여 명 규모의 시위대를 이루었다. 운구 행렬은 안심리(安心里)에서 일본 군대와 충돌하여 일제의 총격으로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당하였으며 군중들은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4월 22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 처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