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선
金鳳善187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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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1873년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남이면(南二面, 현 남면) 녹진리(鹿津里)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집안 및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1907년 7월 서울에서 결성된 호남학회 회보인 『호남학보』 제1호에 실린 임원록에 평의원 중 한 사람으로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의병 활동 시 의병 모집 격문 인쇄 업무를 맡았던 사실과 연계하여 보면, 동일인일 개연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1909년 호남의소(湖南義所) 도통대장(都統大將) 박용식(朴鏞植)이 작성한 의병 모집 격문을 인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호남지역 의병 운동의 기점이 된 것은 1907년 10월에 봉기한 호남창의회맹소였다. 호남 지역의 인사들이 일찍이 1896년부터 의병 운동에 참여해 온 기삼연(奇參衍)을 중심으로 연대하여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였던 것이다. 이후 수많은 의병장이 호남 지역에서 봉기하기 시작하여 1908년과 1909년에는 호남 지역이 의병 항쟁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호남의소’ 도통대장이라는 칭호를 내세우며 전남 광주군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병으로 박용식이 있었다. 박용식이 의병을 모집하려고 배포한 격문이 남아있다. ‘각도 각군 각면 각리 대소 민처(各道各郡各面各里大小民處)’ 앞으로 보내는 격문의 내용에서는 “국가가 비록 망했다고 하나, 의(義)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망한 것이 아니요, 사람이 비록 죽었다고 하나 의가 죽지 않았으면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라고 하며, 의병 참여를 촉구하였다. 당시 박용식이 작성한 격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역할을 하였다. 같은 지역에 사는 장성군 남이면의 김봉의(金鳳儀)와 오성삼(吳成三)은 광주군 각지에 격문을 배포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세 사람은 1909년 5월 말 광주경찰서에 체포되고 말았다. 당시 이들이 가지고 있던 격문은 200여 장이었다고 하며, 인쇄판 40매와 목제활자 수천 개도 압수당하였다. 1909년 7월 1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2년을 선고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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