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홍
金錫弘미상 ~ 1927.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통의부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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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8) 출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고,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한자가 다른 김석홍(金碩弘)이라는 이명이 있다. 만주 방면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9월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焦土計劃)으로 인한 경신참변(庚申慘變)으로 북간도 지역에서의 독립군의 거점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후 1922년 8월 23일, 만주 지린성(吉林省) 환런현(桓仁縣)에서 남만주의 독립군단들이 통합되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었고, 의용군(義勇軍)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보유하였다. 1923년경 의용군 제1중대 2소대 1분대에서 일등병(一等兵)으로 활약하였다. 6월 1일 전용휴(田龍畦) 참사(參士)의 지휘 아래 이화주(李化周)·백운기(白雲起)·한권웅(韓權雄)·박제환(朴濟煥)·이선택(李善澤)과 함께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어뢰면(漁雷面) 하처장(何處場)의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일제 경찰 2명을 처단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강계군 간북면(干北面), 공북면(公北面)의 영림창(營林廠)을 습격하여 엽총 1정과 단총 1정 및 탄환 등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공북면 흑연광(黑鉛礦) 사무소와 기계실을 불태우고, 성간면(城干面) 쌍방동(雙芳洞)에 거주하는 일제의 밀정도 처단하였다. 12월 5일에는 박제환(朴濟煥), 현성희(玄聖熙), 김봉흥(金奉興), 김연학(金連學), 김택규(金宅奎) 등과 함께 작전차 강계군 어뢰면 종인리(從仁里)를 통과하다가 어뢰면 도직거리(道直巨里)의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다. 한편, 통의부 내 공화(共和)와 복벽(復辟)간의 이념 갈등과 군권 장악을 둘러싼 문제들은 무마되지 못하였다. 이에 통의부 의용군 제1·2·3중대, 유격대·독립소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제휴를 꾀하였고, 의용군 제5중대와 더불어 1924년 6월 26일 압록강 연안 지역을 관할하는 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의 직속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이하 참의부)를 결성하였다. 1924년 4월 “임시정부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본분”이라는 취지로 남만주 독립군 각파의 단결을 촉구하는 재남만군인대표회(在南滿軍人代表會)의 선언이 발기될 때, 의용군 제1중대 대표발기인 24명 중 한 명으로 연명하였다. 1924년 6월 4일 주만군(駐滿軍) 제1중대 제1분대장 참사의 신분으로 현성희(玄聖熙)·전창극(田昌極)·최예은(崔禮殷) 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평북 강계군, 위원군(渭原郡)을 비롯하여 함경남도 지방까지 참의부 기관을 배치하고 일제의 경비상황 및 각종 비밀 조사, 지형 탐색 등의 임무를 수행한 뒤 8월 1일에 만주로 무사히 귀영하였다. 9월경에는 평북 강계군(江界郡) 고대동(古臺洞) 일대에서 김여련(金汝連) 등 4명과 함께 일제의 밀정 3명을 처단하였다. 또한 1925년 11월경 참의부의 인사 이동에 따라 김창빈(金昌彬)이 이끄는 제3중대의 예하 소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26년 4월 16일 오후 2시경 만주 지린성 지안현(集安縣) 이양자구(裏揚子溝)에서 참의부 제1중대 제1소대장으로 활약하며 지안현 보갑대(保甲隊) 소속 중국 관헌 20여 명과 약 10분간 교전을 벌였다. 1927년 5월경 지안현에서 중국 관리에 의해 붙잡혀 현성희·최희관(崔熙官)·박지숙(朴志淑)·김원철(金元喆)·성도교(成道敎)·장태홍(張泰弘)·이창윤(李昌允)·김병학(金丙學)·홍수완(洪秀完) 외 70명과 함께 일본 관헌에게 인계된 이후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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