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90. 12. 7 ~ 1946. 1.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중광단
- · 대한국민회
- · 대한정의단
- ·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 · 대한민국임시정부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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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0년 12월 7일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태어났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북간도 지역으로 건너가 1911년 3월부터 북간도(北間島)의 대종교(大倧敎) 신자들이 조직한 중광단(重光團)에 참여하여 중광단이 해산되는 1914년까지 현천묵과 함께 옌지현(延吉縣)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단군교(檀君敎)의 부활을 의미하는 ‘중광(重光)’을 명칭으로 삼은 중광단은 서일(徐一)·현천묵(玄天默)·박찬익(朴贊翊) 등 함북 출신의 근대 교육을 받은 대종교 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무장투쟁 단체였다. 1914년부터 1919년까지는 지린성(吉林城) 허룽현(和龍縣)에 거주하였고 학성학교(學成學校)에서 한인들을 교육하였다. 1919년 4월에는 북간도 한인들의 대표적인 자치 및 무장투쟁 조직인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합류하였다. 북간도 최초의 한인 자치기관인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와 간민회(墾民會)를 계승한 대한국민회는 체계적인 무장 역량 육성과 선구적인 국내 침투 계획 수립에 매진하였다. 특히 대한국민회는 무장투쟁과 국내 침투작전을 위한 결사대원 모집에 중점을 두었다. 1919년 6월까지 옌지·왕칭(汪淸)·허룽 등 3개 현에서 총 600여 명의 청년을 모집해 러시아로 이동시켰다. 이때 임호(林虎)·김강(金剛)·마룡하(馬龍河) 등과 함께 대한국민회의 청장년층을 이끄는 한편, 북간도와 러시아 일대의 학생 조직, 동원을 통한 항일 무장투쟁 역량 확보에 매진하였다. 이외에도 일본 도쿄(東京)의 한인 유학생들을 포섭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데려오기도 하였다. 1919년 5월부터 서일·계화(桂和)·채오(蔡五) 등의 대종교 신자들과 함께 중광단을 확대 재편해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을 조직하였다. 의병과 공교회(孔敎會) 및 대종교 신자들을 규합한 대한정의단은 1919년 8월 무렵 5개 분단(分團) 및 70개 지단(支團)과 약 1,600명에 달하는 단원을 보유하였다. 같은 해 7월 당시 일본 내각 총리대신 하라 다카시(原敬)에게 서일 등과 연명으로 한국 독립을 촉구하는 「건백서(建白書)」를 송부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8월부터 대한정의단이 김좌진(金佐鎭) 등의 군사 전문가를 초빙해 이루어진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일명 北路軍政署)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대한군정서는 약 1,600명의 대원과 1,300정의 총, 150정의 권총, 80여 개의 수류탄을 보유하고 사관연성소(士官鍊成所)를 운영해 자체적으로 간부를 양성한 북간도 최대의 항일 무장투쟁 조직이었다. 대한군정서에서 군사령관(軍司令官) 김좌진을 보좌하는 부사령관(副司令官)에 임명되어 대한군정서의 군무(軍務)를 이끌었다. 1920년 1월경 상하이(上海)의 미국 조계지에서 중한노공동맹연합회(中韓勞工同盟聯合會)가 주관한 독립운동단체 대표자 회의에 간도 지역 노동 대표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그해 3월에는 대한군정서 대표 겸 특사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되어 「대한군정서약사(大韓軍政署略史)」와 「신청서(申請書)」를 전달하였다. 「대한군정서약사」에는 대한정의단의 조직과 대한군정서로의 재편과정, 「신청서」에는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李東輝)에게 보내는 대한군정서 조직의 당위성과 임시정부의 대한군정서 승인 요청이 각각 포함되었다. 1920년 8월부터는 대한군정서 총재부(總裁府) 비서장(祕書長)으로 재임하였다. 대한군정서 총재부는 대한군정서 관내의 사무 전반을 통괄하는 동시에 사령부의 군사 활동을 후원하였다. 2개월이 지난 1920년 10월부터 주병수(朱秉洙)·최정국(崔正國)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휘 감독을 받는 간북북부총판부(墾北北部總辦府)의 참사(參事)에 임명되어 특무 활동을 지속하였다. 간북북부총판부의 총판은 서일, 부총판은 현천묵이 임명되었다. 1925년 3월 10일 대한군정서와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중심으로 16개 지역에 걸친 10여 개의 만주와 국내 항일 단체가 결집한 군정부인 신민부(新民府)에 참여하였다. 북만주(北滿洲) 닝안현(寧安縣)에 조직된 신민부는 근대적 삼권 분립을 표방한 군정부로 북간도 일대 한인들과 관련된 민정과 군정을 지휘하였다. 신민부에 합류한 후 군자금 모금과 무기 확보에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1926년 3월 이단(李檀)·김준(金俊) 등의 신민부원들과 함께 1920년에 독립군이 묻었던 장총 20정과 탄환 2,000여 발을 발굴·운반하다가 중국 관헌에 체포되어 큰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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