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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권

金聖權

1922. 1. 21 ~ 200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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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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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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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다혁당(茶革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2년 1월 21일 경상북도 대구(大邱)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청산(淸山)이고, 이명으로 김성식을 사용하였다. 1939년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낙동강 철교의 복선공사에 강제 노력 봉사로 동원된 가운데 일본인 교사가 한국인 학생을 차별하여 발생한 ‘왜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민족 차별에 대해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를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학생 7명이 퇴학당하고, 11명이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39년 8월 16일 자정 무렵 9기 재학생 권쾌복(權快福)·배학보(裵鶴甫)·서진구(徐鎭九)·권태석(權泰碩)·김효식(金孝植) 등과 함께 왜관 철교 주변 낙동강 백사장에 모여 비밀결사를 결성하기로 결의하였다. 1940년 11월 대구사범학교 7, 8기생들이 중심이 된 문예부, 1941년 1월 23일 대구사범학교 8, 9기생 중심의 연구회 등이 결성되는 것에 자극을 받아 대구사범학교 9, 10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은 영웅은 다색을 좋아한다는 뜻에서 지은 명칭이다. 당수로 권쾌복, 부당수로 배학보를 선정하고, 총무·학술·문예·연구·경기부 등의 부서를 두었다. 다혁당은 대구사범학교의 비밀결사 문예부, 연구회 등을 계승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자각과 독립을 위한 문예 활동을 추진해 실력을 양성할 것을 목표로 하였다. 조직은 새로운 회원 가입을 인정하지 않고, 결성 당시 회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특징을 가졌다. 다혁당의 예술부에서 서화부 책임자가 되어 활동에 참여하였다. 1941년 3월부터 5월까지 여러 차례 비밀 회합을 통해 당원의 비밀 엄수 및 절대복종, 주 2회 회합과 하급생 지도 등을 당 규약으로 정하는 동시에 당시의 운동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전망하였다. 이들은 민족 차별 교육에 반대하여 대구사범학교 안에 일본인으로 구성된 연습과 학생과 대부분 한국인인 심상과 학생에 대한 차별 대우 철폐 방안도 토의하였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 입수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2년여 동안 미결수로 고초를 겪다가 1943년 11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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