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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

金成七

미상 ~ 190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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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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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奉化)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봉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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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경상북도 봉화(奉化) 출신이다. 1907년경부터 봉화 지역을 중심으로 채모(蔡某) 의병장과 함께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고종의 강제 퇴위와 8월 1일 한국 군대의 강제해산으로 항일 의병은 격화되었다. 경북 북부 지역에서도 영주(榮州)·순흥(順興)·풍기(豊基)·봉화 일대에서 이강년(李康秊)·민긍호(閔肯鎬)·변학기(邊鶴基)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일본군의 의병 토벌작전도 그 심도를 더해갔다. 이 지역에 대한 일본군의 탄압은 대구(大邱)에 진주한 제14연대장 기쿠치(菊池主殿) 대좌(大佐)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 1907년 12월 9일 채모 의병장과 함께 휘하 약 130명의 의병을 이끌고 봉화군 황엽령(黃葉岺) 부근 백산(白山) 서남쪽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머물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늦은 시각에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일본군이 급습해왔다. 일본군은 제14연대 1대대 제4중대 야노(矢野陸治) 중대에서 분진(分進)한 가와무라(川村) 소대였다. 이 소대는 12월 8일 봉화군 춘양면(春陽面) 서벽리(西壁里) 북쪽 전거리(田巨里)로 파견되어 정탐 활동을 펴던 중이었다. 12월 9일 오후 5시 봉화군 황엽령(黃葉岺) 골짜기에 채모 의병장이 이끄는 120~130명이 설암(雪岩)에 머물고 있음을 탐지하고 바로 출격을 하였다. 험준한 산 비탈길을 약 40리를 돌아 오후 11시 50분 백산(白山) 서남방 골짜기 끝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의병들을 발견하고 기습 공격을 했던 것이다. 휘하 의병들과 함께 늦게나마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라서 아무런 대비 없이 방심하던 순간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일부는 겨우 피신했으나, 채(蔡) 대장을 비롯한 31명의 전사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일본군은 아무런 피해 없이 화승총 30정과 의류 등 무기와 장비 일체를 탈취해 갔다. 이때 포로로 잡혔으나 도주를 꾀한다는 이유로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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