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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옥

金淳玉

미상 ~ 19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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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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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921년경 서간도(西間島) 창바이현(長白縣)에 거주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 독립운동계는 조국 광복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특히 경술국치를 전후한 시기부터 서북간도로 망명해 국외 독립운동 기지 개척에 온 힘을 쏟아온 민족운동가들은 이를 본격적인 독립전쟁 시발 시기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10여 년 가까이 준비한 무장력을 결집시켜 군사체제를 갖춘 독립군단(獨立軍團)을 편성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서간도 지역에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등이, 북간도 지역에는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국민회군(國民會軍)·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등과 같은 수십 개의 독립군단들이 성립되었다. 이들 독립군단이 성립된 후, 소속 독립군들은 유격대를 구성해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추진하였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은 수많은 독립군 유격대들은 식민지 한국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침략자 일제의 기관을 파괴하고, 그를 운영하는 일본인들과 친일의 무리를 처단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립군단들은 보다 성능 좋은 무기를 확보하고, 인원을 확충해 무장 활동을 강화하였다. 독립군들의 이 같은 활동은 한국을 영구 식민지화하고, 장차 만주(滿洲)를 넘어 중국 대륙까지 침략할 욕심을 가진 일제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이에 일제는 1920년 8월 독립군을 소멸시키기 위한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이어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이 넘는 동안 2만 명이 넘는 일본군 대병력을 서북간도로 침입시켜 독립군 기지를 공격하고 이주 한인 사회를 야만적으로 공격해 이른바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이란 만행을 저질렀다. 침략군의 구성은 한국에 주둔한 일제의 조선군(朝鮮軍) 19·20사단을 비롯해 시베리아 파견 일본군, 북만주(北滿洲) 파견 일본군, 뤼순(旅順)에 주둔한 관동군(關東軍) 등과 압록·두만강변 한국측에 배치된 일제의 경찰대였다. 한국과 가장 인접한 국경지방 창바이현(長白縣)에는 일제가 매수한 창장하오(長江好) 마적단과 국경 주둔 일제 경찰대가 쳐들어왔다. 창비이현은 험준한 골짜기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으로 일제의 기습공격을 방어하기 쉬운 데다 독립군의 국내 진입이 어렵지 않아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광복단(光復團)·흥업단(興業團)·대진단(大震團) 등 여러 독립군단의 본부와 지단(支團)들이 진영(陣營)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같은 독립군단의 근거지를 공략하기 위해 지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중국 마적단이나 국경에 배치되어 수시로 독립군의 동태를 살펴 정황을 잘 알고 있는 경찰대를 들여보냈던 것이다. 이들 마적단과 일제 경찰대가 창바이현을 공격해 들어오자 독립군들도 지형을 이용해 대적하거나, 불리한 형세로 판단되면 밀림 깊숙이 피신해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러자 일제 경찰대와 마적단은 한인 촌락을 샅샅이 수색해가며 반일 행동을 보이거나 반항하는 청장년을 체포해 살해하였다. 일제의 만행이 막바지에 이르러 가는 1921년 3월 3일 창바이현 마야자(馬也子)에서 동지 정명옥(鄭明玉)·김창순(金昌淳)·김영모(金永模)·김이천(金利天)·하승천(河昇天) 등과 함께 체포되어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어느 독립군단 또는 단체의 소속이었는지 현재까지 알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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