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조
金淳祚188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복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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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2) 1886년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양서면(陽西面) 고산리(高山里)에서 출생했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하던 1925년 12월 옥중에서 최신을(崔信乙)과 장준두(張俊斗)를 만났다. 이들과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이 되기로 결의하고, 이듬해 4월 출옥하자 곧 서간도(西間島)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시(丹東市))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안둥현에 있는 최신을의 집에서 조국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의 한복단(韓復團)을 조직하였다. 그들 외에 김병모(金秉模)·최용호(崔龍浩) 등 두 명을 추가해 5명으로 조직된 소규모의 항일 무장 단체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한복단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성립을 주도한 전덕원(全德元)과 연계되어 항일 활동을 벌였다. 대한독립단은 망국 이전 국내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서간도로 망명한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과 전덕원이 조직한 대규모 무장 항일 단체였다. 이 사실을 통해 그와 한복단원은 전덕원의 소속부대임을 자처한 것이다. 1926년 11월 30일 동지인 장준두와 장하현(莊河縣) 임가구(林家溝)에 사는 부호 김영택(金永澤)의 집을 습격해 중국 화폐인 대양(大洋) 12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이어 12월 2일에는 같은 현 두구(杜溝) 황(黃)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서 소양(小洋) 4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달 중하순에는 동지 김병모 및 최용호까지 합세해 활동 범위를 국내로 돌려 의주군(義州郡) 주내면(州內面)으로 진입하였다. 국내 진입 후 19일에는 어적동(於赤洞) 이근화(李根華)의 집에서 두루마기 하나를 받아냈다. 그리고 25일에는 광성면(光城面)으로 가서 유초동(柳草洞) 조용욱(趙用旭)에게서 10원의 군자금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유초동의 이 군자금모집 활동은 일제의 감시망에 포착되고 말았다. 활동을 끝내고 안둥현으로 돌아와 있었으나, 일제의 신의주경찰서 주임 찌노네(茅根)가 경찰대를 이끌고 추격해 와 1927년 2월 14일 오도구(五道溝)에서 전원 붙잡히고 말았다. 한복단원들이 체포된 지 엿새가 지난 2월 20일, 전덕원도 일제의 안동영사관 경찰대와 신의주경찰대의 연합작전에 의해 장하현 임가구에서 붙잡혔다. 1927년 10월 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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