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쇠
金億釗185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경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57년경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연월일은 알 수 없으나 1909년 판결문에 54세로 기재된 것으로 볼 때 1856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07년 후기 의병 전쟁이 일어났다. 11월에는 이인영(李麟榮)·허위(許蔿) 등이 전국 연합 의병의 성격을 갖는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였다. 서울 수복을 목표로 1908년 1월 경기도 양주(楊州)에 집결한 의병은 1만여 명에 달하였다. 13도 창의군은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하는 서울 탈환 작전을 결행했으나 일본군의 선제공격으로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의병들은 각자의 근거지로 돌아가 항일전을 수행하였다. 1908년 5월에는 일본 육군대신의 명령에 의해 일본군 제23연대와 제27연대가 증파되어 대대적인 ‘의병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동하던 민긍호(閔肯鎬)·허위·이강년(李康秊)·신돌석(申乭石)·정환직(鄭煥直)·기삼연(奇參衍) 등의 저명한 의병장들이 전사하거나 처형당하고 말았다. 경북 북부 지역의 일월산과 소백산 일대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던 다수의 의병장도 전사하거나 활동을 중단하였다. 이강년 의병부대의 중군장이었던 김상태(金尙台)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편성하고 그 휘하에 정경태(鄭敬泰)·백남규(白南奎) 등을 거느리고 있었다. 김상태는 1911년까지 경북 북부 지역의 소백산을 중심으로 풍기(豐基)·순흥(順興)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정경태는 강원도 춘천군(春川郡) 군내면 수림계 출신으로 1907년 (음)7월 강원도 울진(蔚珍)·삼척(三陟) 일대에서 활동하던 성익현(成益鉉) 부대에 참가하여 도총장 또는 중군장을 역임하였다. 1908년 6월 이후 성익현이 행방불명되자 정경태는 관동창의대장이 되어 김상태와 함께 순흥·풍기·영월 등지에서 소규모의 의병부대를 지휘하였다. 그 휘하에 봉화(奉化) 출신의 신대룡(申大龍) 등을 거느리고 있었다. 정경태는 1909년 6월 6일 부하 63명을 이끌고 봉화의 오록동을 공격하였고, 1910년 (음)3월 6일 강원도 울진군 서면에서 토벌대의 밀정 장두의를 살해하였고, 의병에 협조하지 않는 노유민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1911년 6월 14일 김상태가 검거된 뒤 정경태도 곧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정경태가 영주·풍기·순흥 등지에서 활동할 때인 1908년 6월 이후에 정경태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윤업이(尹業伊)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초 봉화군 소천면(小川面)에서 군량미와 군수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10년 9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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