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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

金成道

187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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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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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全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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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878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며,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소양면(所陽面) 해월리(海月里) 출신이다. 전주에서 여인숙(旅人宿)을 경영하던 중 1920년 10월경 자택에서 조기선(趙基善)·고판홍(高判洪)·유기홍(柳箕弘)·김성수(金成洙) 등과 회합하여 임실군(任實郡) 내 부호(富戶)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모집된 자금 중 일부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나머지 일부는 자신들이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고판홍이 이선경(李善京)에게 의뢰하여 철관(鐵管)으로 총통(銃筒)을 제작하고 나뭇조각을 이용하여 모의 권총 2자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성수가 금융조합(金融組合)의 출금전표를 구매해오는 등 구체적인 활동 준비를 하였다. 같은 해 11월 30일 조기선·고판홍·유기홍과 함께 임실군 청웅면(靑雄面) 옥산리(玉山里)에 있는 오태섭(吳泰燮)의 주막에서 임실면(任實面) 신안리(新安里) 한규석(韓奎錫)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날 바로 유기홍과 고판홍이 실행에 옮겨 임시정부의 기부금을 모집하러 왔으니 능력껏 협조하라고 하였으나 군자금 모집에는 실패하였다. 이후에도 조기선·유기홍·고판홍은 그해 12월 3일까지 임실군 내 각 면의 부호들을 찾아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몇 차례 계속하였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다가 동지들이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함께 붙잡혔다. 1921년 3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강도죄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당시 다른 동지들은 모두 5~6년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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