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金成洙1901. 7. 8 ~ 1965. 12.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법정사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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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5) 1901년 7월 8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중문면(中文面, 현 서귀포시) 월평리(月坪里)에서 태어났다. 김성숙(金誠淑) 등의 이명이 있다. 1918년 3·1운동 직전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 시위는 일제하 제주도의 항일운동을 대표하는 무력 투쟁이다. 법정사 항일 시위를 이끈 사람은 김연일(金連日)이었다. 김연일은 태을교(太乙敎)의 지도자로서 1914년 제주도로 들어와 1918년 4월부터 항일 무력항쟁을 계획하다가 같은 해 9월 선도교(仙道敎) 지도자인 박주석(朴周錫)과 법정사 비밀회의에서 무력항쟁을 모의하였다. 선도교와 태을교는 모두 강일순(姜一淳)을 교조로 받드는 신흥종교였다. 항일 무력 항쟁은 1918년 10월 4일부터 시작되었다. 10월 5일 김연일이 자신을 ‘불무황제’라 선포하자, 같은 날 당시 21세의 나이로 청장년 33명으로 결성된 선동대의 일원으로 항쟁에 참여하였다. 10월 7일 새벽, 법정사에 집결한 선봉대의 일원으로 서귀포 방면으로 무력 항쟁을 개시하였다. 선봉대는 화승총 3정과 몽둥이 수십 개를 들고 큰 깃발을 내세우며 절을 내려가 도순리(道順里)·영남리(瀛南里)·서호리(西好里)·호근리(好近里)를 돌며 대오를 꾸렸다. 서귀포 습격이 중지되고 중문리 경찰주재소 습격으로 작전이 변경되자, 다른 선동대원들과 함께 중문리(中文里)로 향하던 중 강정리(江汀里)와 도순리 사이에 있는 대천(大川) 연변에서 서귀포에서 제주성을 잇는 전선과 전주(電柱)를 절단하였다. 하원리(河源里)에 이르러 항쟁 대오는 4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하원리에서 중문리로 향하던 길에서 일본인과 목사 일행을 만나자 돌을 던지고 곤봉으로 구타하였다. 중문리에서는 경찰주재소장 요시하라(吉原)를 비롯한 경찰 3명을 포박한 뒤 경찰주재소에 갇혀 있던 13명을 풀어주었고. 주재소 건물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오전 11시경 서귀포 경찰주재소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공격해오자 항쟁 대오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이때 현장에서 현행범 38명 중 한 사람으로 체포되었다. 같은 해 11월 11일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1919년 2월 4일 재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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