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심
金誠心188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대한애국부인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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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883년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차명건(車明建)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고, 같은 군의 공립보통학교에서 3,000여 명의 민중이 결집한 가운데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붙잡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으로 기소되어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6월경 평남 평양을 중심으로 기독교 장로파(長老派)와 감리파(監理派)의 부인 신도들이 각기 자기 교파의 부인 신도들을 결합하여, 중국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원조를 목적으로 하는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8월경 이성실(李誠實)의 권유를 받고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10월에 강서군 함종읍(咸從邑)에서 박영복(朴永福)과 함께 감리파 애국부인회 함종지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김성실 등을 회원에 가입시키고 회비를 징수하여 평양 본부로 송부하였다. 1919년 8월경 임시정부는 ‘정부’를 지원하는 국내 비밀 조직을 통합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김정목(金貞穆)·김순일(金淳一) 등을 파견하여 두 단체의 통합을 권유하였다. 마침내 11월 연합의 논의가 성립하자, 같은 달 상순경 그를 비롯한 각 단체 간부 각 6명이 평양부 신양리(新陽里) 김경희(金景喜)의 방에 모여 두 단체가 연합하여 애국부인회를 조직하기로 합의하였다. 명칭은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라 결정했다. 연합회 본부는 평양에 두었고, 주요 지방에 지회를 두는 계통적 비밀결사를 이루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재무부·교통부·적십자부의 부서를 설치하고 기존의 지회조직을 흡수하여 회원 100여 명이 활동한 서북 지역 일대에서 규모 있는 부인회 조직이었다. 항일독립사상의 고취와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힘써 2,000여 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1920년 10월 증산(甑山)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군자금을 나르던 중 체포되면서 조직이 발각당해 같은 해 11월 강서경찰서에 붙잡혔다. 1920년 12월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불복, 항소하였으나,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형량이 늘어나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평양감옥에 수감되어 큰 고통을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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