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대
金成大188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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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881년경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에서 출생하였다. 1923년경 남만주(南滿洲)의 통합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검무감(檢務監)으로 활동하였다. 통의부는 경신참변(庚申慘變)후 파괴된 한인 사회를 복구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지속하고자 1922년 8월 17개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하여 성립된 단체였다. 일제는 재만(在滿) 독립군의 근거지를 소멸시키려고 1920년 10월 약 2만 명에 달하는 대병력을 서북간도를 향해 침입시켰다. 이들 일본군 대병력은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여 동안 독립군의 근거지는 물론이고, 이주 한인 사회까지 초토화하였다. 약 3,700명에 달하는 한인을 살해하고, 3,300채가 넘는 한인의 가옥과 학교·교회, 그리고 독립군 기지를 파괴하고 방화하였다. 일본군이 물러간 뒤, 남만주의 독립운동계 지도자들은 초토화한 한인 사회와 기지를 단합된 힘으로 복구하고자 1921년 하반기부터 통합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22년 초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광한단(光韓團) 등 일부 독립운동 세력이 통합을 이루어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성립시켰다. 그리고 그 해 8월 남만주에 산재한 17개 독립운동 단체를 모두 통합해 통의부를 탄생시켰다. 통의부는 총장 김동삼(金東三)이 이끄는 중앙조직과 무장 항일을 전담할 의용군을 편성하고, 남만주에 산재해 형성된 한인 사회를 관할할 지방조직을 만들었다. 즉, 한인 가옥 1,000호(戶)를 담당하는 16개의 총관소(總管所)와 그 아래 100~200호를 담당하는 구(區)를 설치해 중앙조직과 연계해 한인의 삶을 도모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총관소에는 최고 책임자인 총관(總管)이 있고, 그 밑으로 참사(參事), 서기, 검무감, 검무원, 통신원 등이 임명되었다. 이러한 통의부 지방조직 중 퉁화현(通化縣) 북부 지방을 담당하는 통북(通北) 총관의 검무감으로 활동하였던 것이다. 1923년 9월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를 포함한 간토(關東) 지방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른바 ‘간토대지진’이다. 통의부 지도부는 이를 절호의 기회로 보고 의용군 사령관 김창환(金昌煥)의 지휘하에 독립전쟁 실행을 계획하였다. 독립군 인원을 보충하고 무기 확보 계획을 짰다. 이러한 의용군사령부의 계획에 의해 9월 하순, 동지 양찬문(梁燦文)과 함께 일제의 퉁화영사관 경찰대가 보유한 무기 탈취를 위해 사전 탐색반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총관 김진호(金鎭鎬)의 명령을 받고 퉁화현 관내 한인 마을인 강산(崗山) 3도구(道溝)로 출장을 가서 의무금 징수 활동을 벌였다. 통의부는 독립운동 수행을 위해 관할 지역내 한인들에게 호당(戶當) 1원 5각(角) 정도의 의무금을 징수하였다. 독립군 유격대가 국내 진입작전을 펼쳐 군자금을 모집했으나 필요 금액을 충분히 모집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통의부뿐만 아니라 다른 독립군단들도 관할 지역내 한인들로부터 일정의 의무금을 징수해 독립운동을 수행했던 것이다. 한편, 성립 당시 통의부는 구성원 각자의 이념과 노선을 초월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성립되고 1년도 되지 않은 1923년 초,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이념으로 한 전덕원(全德元)·채상덕(蔡相悳) 등이 의군부(義軍府)를 성립해 이탈하고, 1924년 봄에는 무장투쟁론자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속의 참의부(參議部)를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남아있던 통의부 인사들은 1924년 전반기부터 다시 주도적으로 통합 운동을 추진해 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 등 다른 7개 단체를 통합해 1924년 11월 24일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통의부 내 이념 갈등으로 의군부(義軍府)와 참의부(參議府)가 별도로 조직되어 이탈해 나가자, 통의부에 남아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다시 통합운동을 추진하여 1924년 11월 24일 7개 단체와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였다. 통의부와 마찬가지로 정의부도 한인 사회 자치 활동을 위한 행정기구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의용군을 편성하였다. 정의부는 하얼빈에서 액목(額穆)에서 북간도까지 선을 그어, 그 이남 남만주에 형성된 한인 사회 전체를 관할 지역으로 획정하였다. 그리고 통의부와 마찬가지로 한인 사회의 삶을 이끌 자치활동과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자치활동을 위해서는 행정·사법·입법을 담당할 중앙행정위원회·중앙심판원·중앙의회 등을 설치했고, 항일 무장 활동을 수행할 의용군이 편성되었다. 성립 초기 행정의 총책임자인 중앙행정위원장은 이탁(李沰)이었고, 그 밑에 민사·군사·법무·학무·재무·교통·생계·외무 등을 담당할 행정위원장들이 선임되었다. 중앙조직 이외 관할 지역을 관리할 지방조직도 구성되었다. 즉, 이주 한인 1,000호를 한 단위로 해 총관구(總管區)를 설치하고, 그 밑에 500호를 담당할 지방(地方), 100호를 담당할 백가장(百家長), 50호를 담당할 구(區), 10호를 담당할 십가장(十家長) 등이 만들어졌다. 총관구의 장은 총관이었고, 그 밑에 지방행정위원들이 임명되어 지방조직을 이끌었다. 1925년 4월경, 김학선(金學善)·한진섭(韓進涉) 등과 함께 정의부 지방조직인 퉁화(通化) 지방 행정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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