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로
金成魯1896. 6. 5 ~ 1936. 3.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 · 북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청산리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1896년 6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천전리(川前里)에서 김규식(金圭植)의 아들로 태어났다. 종조부(從祖父)는 백하(白下) 김대락(金大洛)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의 부위(副尉)로 근무하였으나 같은 해 7월 31일 군대가 해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 더욱이 아버지 김규식이 1907년 고향 천전에 설립된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종조부 김대락은 자신의 사랑채를 기꺼이 협동학교의 교사(校舍)로 내놓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찍이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김동삼(金東三)·이상룡(李相龍) 등 안동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신민회(新民會)와 더불어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에 1910년 12월 종조부 김대락이 망명하자, 할아버지를 따라 1912년 봄 아버지와 함께 서간도로 들어갔다. 김대락은 류허현(柳河縣) 싼위안푸(三源浦)에 정착하여 김동삼·이상룡·이회영(李會榮) 등과 함께 1911년 여름 동포들의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였으며, 교육기관으로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였다. 1912년 2월에는 류허현 하니하(蛤泥河)로 옮겨가 그해 가을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였으며, 신흥강습소도 하니하로 이전하여 1913년 5월 신흥중학(新興中學)으로 개칭하였다. 이에 아버지 김규식과 함께 하니하에서 부민단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한국 교민의 정착에 노력하는 한편, 신흥중학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4월 초순 부민단은 한족회(韓族會)로 개편되어 11월 17일 임시정부 산하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로 개편되었다. 이에 발맞춰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에서 활동하던 지청천(池靑天)·李靑天이 신흥중학에 부임하면서 5월 3일 신흥중학을 신흥무관학교로 개편하였다. 신흥무관학교로 개편되면서 찾아오는 애국 청년들을 입학시켜 훈련하려고 학교를 류허현 구산쯔(孤山子)로 옮기게 되었다. 구산쯔로 옮긴 신흥무관학교는 교사진을 개편하였는데, 이때 교장 이천민(李天民), 교감 윤기섭(尹琦燮), 교사 지청천 등과 함께 교관이 되어 군사교육을 통한 무관 양성에 참여하였다. 1920년 8월 신흥무관학교가 폐교되면서 지청천이 조직한 교성대(敎成隊)와 함께 백두산 지역으로 이동하여 재기를 모색하였다. 1920년 10월에는 북로군정서 독립군단에 편성되어 청산리대첩에 참전하였다. 북로군정서는 1920년 9월 9일 사관연성소를 제1기로 졸업한 298명을 선발대 1개 보병대대와 1개 교성대로 편성하였는데, 이때 교성대에 편성되었다. 당시 보병대대 제1중대장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10월 21일 아침부터 26일 새벽까지 6일간에 걸쳐 수행된 청산리대첩에 참여하여 대일항전을 벌이던 중 부상을 입었다. 이 전투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결국 1936년 3월 5일 4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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