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도
金成道미상 ~ 190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태식 의진(신태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9) 정확한 출생 시기는 알 수 없다.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출신으로 1907년 신태식(申泰植)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일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이어 한일신협약으로 인해 통감부가 내정간섭권을 대폭 강화함에 분개하여 의병 활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군이 강제로 해산당하자 이에 항거한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세하면서 일본과 전면 전쟁의 성격을 띠는 대일 항전으로 확대되었다. 해산 군인의 항전은 서울의 시위대부터 시작되어 원주·강화·홍주·진주진위대로 확대되었다. 이들은 각기 의병에 가담하여 전력을 강화시켰다. 신태식은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출신으로 한학에 조예가 깊고 풍부한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22세 때인 1895년 을미의병기에 문경에서 의병을 소집하여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02년 내부 주사와 통훈대부 중추원 의관을 역임하다 1907년 문경에서 의병 활동을 재기하였다. 이강년(李康年) 의병부대와 합진하여 소모후군장(召募後軍將)의 직임을 맡아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갈평전투를 비롯해 죽령·소백산맥을 중심으로 울진·평해·영양·산동·제천·원주·홍천·철원·가평·영평·양양·강계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와 같은 신태식 의병부대의 포군으로 항일전투에 앞장섰다. 일본군이 신태식 의병부대와 이강년 의병부대의 활동 지역인 문경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갈평전투 이후 문경을 떠나 풍기·죽령을 넘어 단양으로 진격하였다. 이어 죽령을 넘어 안동 지방으로 진격하며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1908년 이강년 부대가 서울진공연합작전을 전개하려고 경기 북부 가평으로 북상할 때 신태식 의병부대도 함께하여 가평과 포천전투를 치렀다. 이후 양양으로 진격하여 양양읍을 엄습하고 일본군의 병참수비대를 소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강년 부대와 헤어지고 신태식 의병부대은 평안도 수안과 숙천을 거쳐서 강계로 진출하였다. 이때 평북 강계에서 군사를 소모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전사 순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신태식은 다음과 같이 애통한 마음을 글로 남겨 후세에 전하였다. “선봉이 내고(來告)하되 포군 1명 피살이라 올라가 수렴하니 영월 있는 김성도(金成道)라. 산상(山上)에 갖다 놓고 붙들고 통곡할 제 불쌍하고 참혹하다. 이를 어찌 하잔말가 불원천리 날 쫓아와 객지고혼 되단말가. 너의 부모 너 보낼 제 전체(全體)를 훌여 잡고 누대로 상한(常漢)되어 나라 일이 무엇이뇨. 육남매를 다 죽이고 너 하나를 만득(晩得)하여 감고(甘苦)를 같이하고 잠시 난측(難側) 맞았더니 국가이 불행하여 이 지경이 되난구나. 날 죽이고 네가 가지 살려두고 못가리라. 후덕사신 대장 사도(使道) 소녀자식 노와주고 당상에 학발노친(鶴髮老親) 엇지하여 봉양허며 복중(腹中)에 깃친 자식 의탁할 곳 전혀 없다. 울음 울고 사실(辭實)소리 내 귀에 젖어있다. 회군 길에 영월 들려 무엇이라 대답하노(후략).”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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