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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륙

金成六

1863 ~ 1908.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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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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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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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출신으로 충청남도 공주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7년 광무황제(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해산을 계기로 전국에서 후기 의병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1908년 1월 전국 연합 의병부대인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이후 전국 각지의 의병장들은 자신의 연고지를 바탕으로 의병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에 1908년부터 충남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산방리(山房里) 지역에서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의병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알아챈 공주경찰서 순사들은 1908년 1월 12일 저녁 6시 체포하려 하였다. 이에 항거하여 화승총을 쏘며 최후까지 교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행적이 확인되는 유일한 자료는 1908년 1월 14일 공주경찰서장 경시(警視) 스즈키鈴木重民가 경무국장(警務局長) 마츠이(松井茂)에게 보낸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 내용은 “경북 대구 출생 김성륙(金成六, 45세)이란 자(者)가 공주 정안(正安) 산방(山房)에 잠복하고 근래 폭도(暴徒, 의병을 말함)의 우두머리가 되어 목하(目下)에서 계속 부하를 모집하고 있음을 탐지하고 상(尙)·윤(尹)·배(裵) 세 순사를 인솔하여 1월 12일 오후 6시에 체포하러 갔더니 적(賊, 의병을 말함)은 완강하게 화승총(火繩銃)을 발포하며 저항하므로 순사들은 부득이 이를 참살(斬殺)하고 시신(屍身)은 동장(洞長)에게 인도하여 매장하게 하고 화승총 6정을 발견하여 압수하였다”라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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