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대
金萬大1888 ~ 1910. 8.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참봉 의진(김참봉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남한폭도대토벌작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전라북도 무장군(茂長郡, 현 고창군) 청해면(靑海面) 삼가리(三街里) 출신이다. 정확한 생년월일은 전해지지 않으나, 1909년의 판결문에 22세로 기록된 것을 미루어보아 1888년에 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안 및 성장 과정은 알 수 없으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김참봉(金參奉)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09년 일본군에 투항하여 옥고를 겪다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김참봉(본명 : 김영진(金永鎭), 이명 : 金永辰)은 1907년 광무황제(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칠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는 것을 목도하고 전북 부안(扶安)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안·고부(古阜)·무장·김제(金堤) 등에서 서응오(徐應五)·김내서(金乃西)·문홍순(文洪順)·전판용(鄭判用)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는 김참봉 의병부대의 모습을 보고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음)3월 중 김참봉 외 40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무장군 심원면(心元面) 월산리(月山里)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고, 동년 (음)5월 무장군 청해면 송산리(松山里)에서, (음)9월 무장군 청해면 안산리(安山里) 등지에서 엽전 300냥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9년 일제는 호남 지역의 의병부대를 제압하려고 대규모 정규군을 동원하고, 군사작전을 펼쳤다.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이라 불리는 일제의 대규모 군사적 압박으로 수많은 의병 및 의병장이 체포되거나 사망하였다. 김참봉 의병부대 또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일제의 포위망을 뚫을 수 없어 1909년 11월 19일 결국 보병 제1연대에 투항하였다. 이후 1909년 12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검사 이시카와 노부시게(石川信重)의 판결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그러다가 1910년 8월 30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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