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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金昇玉

1893. 2. 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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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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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철산(鐵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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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보합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93년 (음)2월 1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광봉리(光峯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3년간 한문을 배웠으며, 그곳의 사립보통학교(私立普通學校)에서 6개월 정도 수학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7월 철산에서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에 가입하여 교통원(交通員)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보합단, 일명 보합단(普合團)은 1920년 8월경 김시황(金時晃)·김동식(金東植)·백운기(白雲起)·김중량(金仲亮)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로서, 평북 철산을 비롯해 의주(義州)·선천(宣川)·용천(龍川)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출신 김동식이 1920년 3월 국내로 돌아와 백운기 등과 함께 결성한 대조선청년결사대(大朝鮮靑年決死隊)를 확대한 조직이다. 단원이 500여 명에 달했으며, 단장은 김시황, 총무는 김동식, 재무는 백운기, 선전은 김도원(金道源)이 맡았다. 평북 의주군(義州郡) 내에 있는 동암산(東巖山)을 근거지로 활동하였으며, 한국 각지의 부호(富戶)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암살대(暗殺隊)를 조직하여 일본인 군인과 경찰, 친일 밀정(密偵) 및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고 식민통치기관을 습격하는 등 무장 투쟁을 집중적으로 벌였다. 1920년 (음)7월 같은 마을의 조카 김내홍(金迺洪)의 집에서 김유신(金攸信)·김운기(金雲起)·안효준(安孝俊) 등의 권유로 보합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남시(南市)의 시장에서 박초식(朴初植)·김득하(金得夏) 등과 단원 모집 방안을 논의하였다. 그해 (음)7월 20일 밤 김내홍의 집에서 김운기·김현원(金賢元)·지창숙(池昌淑) 등과 만난 자리에서 보합단의 교통원 임무를 제안받았다. 교통원의 주된 임무는 단원들로부터 문서 등을 전달받아 단장에게 보내는 등 연락원 역할이었다. 그날 밤 이들과 함께 의주군의 동암산 본부로 가서 단장 김중량 이하 간부들을 만났으며, 김중량으로부터 1개월에 2회는 반드시 본부에 와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입단청원서」 2매, 부속서류 45매, 「경고문」 25매 등을 받아와 이를 김내홍과 김내범(金迺範)에게 전달하였다. 그해 (음)8월 5일경에는 김내범으로부터 이광세(李光世)·조창화(趙彰和)·신태정(申泰楨)·김인상(金仁尙) 등 8명의 입단서를 건네받아 이를 박초식이나 조원세(趙元世)에게 전달하였다. 또한 그해 10월 중에도 동암산 본부에서 김유신으로부터 「정칙입단서약서(定則入團誓約書)」와 장부(帳簿), 어음 등을 받아 김내범에게 전달하였다. 보합단원들의 활동은 동암산 근거지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선천군 산면(山面)으로 이동 중이던 1920년 10월 2일 산면 보곡사(普谷寺) 뒷산에서 추적해온 경찰대의 습격을 받고 교전(交戰) 끝에 단원 3명이 피살되고 다수가 붙잡혀 각종 서류들을 빼앗기면서 세간에 드러나게 되었다. 체포를 피한 단원들은 근거지를 서간도의 콴뎬현(寬甸縣)으로 옮기고 조직을 재편한 뒤, 11월 중순경에는 국내에서 이종영(李鍾英) 등이 조직한 무장 단체와 연합해 투쟁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1920년 12월 초 서울 운니동(雲泥洞)에서 밀정의 밀고로 또 다시 조직이 발각되었다. 종로경찰서 순사 이정선(李廷善)의 사살 등을 계기로 이종영·김도원 등 20여 명이 붙잡히면서 조직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이듬해인 1921년 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보합단원에 대한 체포 선풍은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김도원 등 20명의 동지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2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 200일 산입)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도원에게는 사형이 선고되고 다수가 10년 이상의 형을 받는 등 보합단 간부들은 대체로 중형에 처해졌다. 형 집행 만기일은 1923년 6월 20일이었는데,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22년 9월 14일에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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