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金昇鉉189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함종대한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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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1891년경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함종면(咸從面) 송동리(松洞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정현(金鼎鉉)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기독교에 입교하여 권사(勸士)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강서군 함종읍(咸從邑)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함종의 3·1운동은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출신 개업의(開業醫) 강기팔(姜基汃), 잡화상 김용수(金龍洙), 범오리(範五里)의 이능훈(李能勳)·오영선(吳永善) 등이 주도하여 그곳 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5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일어났다. 이후 인근의 발산(鉢山)·승영(升盈)·광덕(廣德)·계명(桂明) 등 각 동리에서도 참가하여 시위대는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른바 ‘소요범(騷擾犯)’으로서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평양지방법원에서 90대의 태형(笞刑)을 받았다. 평소 일제에 대한 반감을 품고 독립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모색하면서 윤석용(尹錫用)·곽대민(郭大珉)·곽원상(郭元相) 등과 자주 모임을 가졌다. 그러던 중 1919년 7월(또는 12월) 함종면 송동리 자택에서 윤석용·곽대민·곽원상·강기함(姜基涵)·이재찬(李載讚) 등 17명의 동지와 함께 함종대한청년단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함종청년단’이라고도 불리던 함종대한청년단은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국내 조직 ‘대한독립청년단’의 함종 지역 조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에 열심이므로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때 단장을 맡고, 부단장은 윤석용(尹錫用)이 맡았다. 단용인장(團用印章)과 단원증서(團員證書)를 발행하고 수십 명의 단원을 모집하여 1인당 단비(團費) 1원씩을 거뒀다. 이들은 리볼버 권총을 구입하는 한편, 군자금 영수증 등의 서류를 인쇄하고 인장을 제작하였다. 이를 이용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1년 2월경 윤석용·곽대민·강기함 등과 함께 강서경찰서에 붙잡혔다. 그해 3월 31일 동지 5명과 함께 평양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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