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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익

金東翼

1896. 9. 1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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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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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초산(楚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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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6년 9월 17일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서면(西面) 지천동(地天洞)에서 출생하였다. 1931년 10월 초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씬빈현(新賓縣)에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 가입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재만(在滿) 독립운동 단체가 전개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운동의 결과 1929년 5월 말 남만주의 통합 독립운동체로 성립되었다. 여러 독립운동 단체가 남북만주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판단한 민족운동자들은 1927년 전반기부터 재만 독립운동계를 하나로 뭉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만주 독립운동계를 하나로 통합하지는 못했지만, 당(黨)에서 논리를 세워 군(軍)으로 조국 광복을 달성한다는 목표 하에 남만주에서는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및 군(軍), 북만주에서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및 군(軍)이 성립되었다. 성립 초기 조선혁명군은 총사령관 이진탁(李辰卓), 부사령관 양세봉(梁世奉), 참모장 이웅(李雄) 등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씬빈·환런(桓仁)·류허(柳河)·퉁화(通化)·지안(輯安)·콴뎬현(寬甸縣) 등 남만주 전 한인 사회를 관할하며, 이들 지역 곳곳에 독립군을 배치하여 항일 무장 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조선혁명군의 제4중대 참사(參事)에 임명되었다. 가입 후 초기 임무는 구입한 총기 및 군사 장비를 본부로 운반하는 일과 중대와 본부 간의 연락사항이나 4중대와 다른 중대 간의 문서나 긴급사항을 전달하는 통신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한국에 이어 중국대륙까지 침략할 욕심을 품은 일제는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유조호(柳條湖)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일제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만철(滿鐵)철로를 폭파한 뒤, 이를 중국 측의 소행으로 덮어씌운 조작 사건이었다. 이를 구실로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순식간에 중국 측을 제압하고 1932년 3월 1일 괴뢰국가인 ‘만주국(滿洲國)’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1931~32년 일본군과 만주국군에 의한 한국 독립운동가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지고, 만주국 설립 이후에는 친일 한인들의 독립군 활동 방해도 심해졌다. 이에 먼저 친일 무리들을 색출해 처단해야만 하였다. 무기 운반과 통신 활동으로 만주의 지리에 익숙해지자 단원들과 함께 별동대를 조직해 친일파 척결에 나섰다. 친일파들은 독립군의 기밀을 빼내 일본군 또는 일제의 영사관경찰에 넘겼기 때문에 독립군 근거지 주변에 거주하는 대담한 자도 있었지만, 대개는 영사관 주변에 살았다. 따라서 영사관 주변에 거주하는 친일파를 처단하려면 큰 위험이 따랐고, 기회를 포착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영사관 경찰대에 신분이 발각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1932년 2월 6일 작전 수행을 위해 류허현 싼위안푸(三源浦)로 출정하였다가 일제의 퉁화현 영사관경찰대에 붙잡혔다. 그해 4월 9일 신의주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5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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