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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金世用

1887. 2. 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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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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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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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87년 2월 7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가산면(加山面) 방산동(方山洞)에서 태어났다. 1912년 10월경 압록강을 넘어 서간도(西間島) 콴뎬현(寬甸縣) 안쯔거우(安子溝)로 갔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의주와 마주한 콴뎬현은 19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많은 의주 출신들이 이주한 지역이었다. 일제의 혹독한 착취와 탄압을 피해 강을 넘기도 했지만, 독립운동을 실천하러 도만(渡滿)한 사람도 많았다. 콴뎬현은 약 90% 정도가 산악인 험준한 지역으로 1910년대 콴뎬현으로 넘어온 의병을 비롯한 민족운동가들이 독립운동 기지로 만들려고 노력한 곳이다. 많은 동향인(同鄕人)들이 이주하여 추진한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함께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4월 15일 류허현(柳河縣) 시거우(西溝) 다화셰(大花斜)에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 조직되었다. 대한독립단은 국내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독립군단(獨立軍團)이다. 이 군단 중앙조직의 최고 지휘관은 관동(關東) 의병장 출신 박장호(朴長浩)가 도총재(都總裁)가 되었고, 부총재 백삼규(白三奎), 참모장 윤덕배(尹德培), 총단장 조맹선(趙孟善), 사법부장 이웅해(李雄海) 등이 선임되었다. 그리고 류허현 주변 서간도 각 지역과 국내에 지방조직이 설치되었는데, 콴뎬현의 경우 관뎬지단(寬甸支團) 아래 동·서·남 3개 지역으로 나누어진 관동(寬東)·관서(寬西)·관남총관(寬南總管)이 만들어졌다. 1920년 4월 대한독립단 관남총관 총무 박명화(朴明化)의 권유를 받고 지단원이 되었다. 1922년 2월 초에는 관남총관 검무원(檢務員)에 임명되었다. 검무원의 임무는 독립군을 탄압하려는 일본 관헌의 동태를 살피고, 통신 연락 등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콴뎬현은 압록강과 접해 있었기에 대한독립단 유격대원들이 국내로 진입할 때 이 지역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한국 쪽 강변에는 일제의 국경수비대가 촘촘히 배치되어 있었다. 이 같은 일제 국경수비대의 배치 상황을 면밀히 조사한 후 유격대원들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일은 대개 통신원의 역할이었으나 검무원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1922년 (음)3월경 이기준(李基俊)·김기원(金基元) 등 10여 명의 단원과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하는 임형정(林亨貞)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임형정은 콴뎬현 뤄쯔거우(羅子溝)에 거주하며 현내(縣內) 여러 독립군단의 기밀 사항을 빼내 일제에 전달하고 호의호식하는 악질적인 친일파였다. 밤 11시 단원들과 임형정의 집을 급습해 그와 그의 처를 처단하고 장남에게는 중상을 입히고 철수하였다. 지방조직의 소속원이면서도 이같이 본부의 유격대 못지않은 활동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1924년 9월 30일 국내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귀대하던 중 신의주에서 붙잡혔다. 첩자에 의해 신분이 노출되어 감시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던 신의주경찰대가 세관 옆에 대기중이던 배를 타고 있을 때 덮친 것이다. 1925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 감형되어 1933년 9월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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