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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제

金信濟

1911. 2. 26 ~ 1967.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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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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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海南)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해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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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전남운동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1년 2월 26일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북평면(北平面) 이진리(梨津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아기(金阿基)·김신재(金信才)이다. 17세 때 해남의 동광학원을 졸업하고 약 1년간 동광학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1년 11월경 김홍배(金洪培)로부터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 1932~33년의 2년에 걸쳐 김홍배·박태술(朴太述) 등과 함께 해남군 이진리 마을 빈곤 대중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활동하였으며, 가을걷이가 끝난 11월 소작료 감면 등을 요구하는 소작쟁의를 계획하였다. 1933년 2월에는 동리 사람들의 정례 집회에서 고용인들의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하였고, 7월에는 김 어업조합의 조합원 공제저금 환불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이를 통해 대중의 처우를 개선하고 동시에 혁명적 농민조합과 노동조합 조직을 위한 조직적 기반을 다지고자 하였다. 해남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 기반을 만들며 활동하던 이들은 대중운동 지도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완도·강진·영암 등 주변 지역의 활동가들과 연계하여 1933년 5월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8월 활동의 중심을 농민에 맞추어 조직을 적색농민조합건설준비위원회(赤色農民組合建設準備委員會)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마을별로 농민반·청년반·부녀반 등을 먼저 조직하고, 이 조직들을 연계하여 큰 지역 단위의 혁명적 농민조합을 건설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연계 활동이 경찰에 포착되어 1934년 2월에 강진을 시작으로 전남 전역에서 검거가 시작되었고, 3월 1일 새벽 북평면에서 17명의 청년이 체포될 때 함께 붙잡힌 것으로 보인다. 9월에 예심에 회부되었고, 1년여 후인 1935년 12월 21일 예심을 종결하고 공판에 회부되었다. 다시 1년 후인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미결구류일수(未決拘留日數) 545일이 본형 기간에 포함되어 선고 며칠 후 출감하였다. 1967년 4월 1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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