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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지

金大支

1897. 4. 8 ~ 19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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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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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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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97년 4월 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미곡동(美谷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대지(金大智)가 있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영덕 지역에서의 3·1운동은 3월 18일 영해면(寧海面)에서의 대규모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군내 총 9개 면 가운데 영덕면·영해면·창수면·병곡면(柄谷面)·남정면(南亭面)·지품면(知品面) 등 6개 면에서 일어났다. 영덕, 특히 영덕 북부의 영해면·창수면·병곡면의 시위는 경북 내에서도 가장 격렬하였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해면 성내동(城內洞)장터에서는 3월 18일 오후 1시경에 군중이 독립 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같은 시간 영해면 북서쪽에 위치한 창수면의 두메마을인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 10여 명도 영해의 만세 시위에 참가하려고 길을 떠났다. 그러나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렀을 때 영해까지 가기에는 이미 늦었으니 창수경찰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신기동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한 후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튿날인 3월 19일, 이현설·권재형(權在衡)·이현우(李鉉祐)·김치운(金致雲)·이현석(李鉉奭) 등이 이끄는 200여 명의 군중이 창수경찰주재소 부근에 모여 만세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영해의 만세 시위와 마찬가지로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벽과 천정 등을 파괴하였으며, 건물 내 집기와 서류 등을 파손하였다. 또한 주임순사와 한국인 순사보들이 마을 곳곳에 숨겨둔 여러 잡물과 서적들을 찾아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7시에 철수하였다. 영해에 파견된 일본군 부대는 창수동으로 하사 이하 6명을 보내 시위를 진압하도록 하였으나, 이들이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시위대가 철수한 뒤였다. 이후 일본 군경에 의한 대대적인 검거가 실시되었다. 이때 함께 붙잡혔다. 1차로 김세영(金世榮) 등 96명, 2차로 남응하(南應夏) 등 74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검사의 심문에 답하면서 19일 당시 주인인 이현우가 만세 시위를 권유하여 그와 함께 경찰주재소 앞으로 가서 만세를 부르고 서류를 파기하였다고 진술하였다. 6월 5일 대구지방법원,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모두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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