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배
金德培1885. 11. 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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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85년 11월 5일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봉북면(鳳北面) 원동리(院東里)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延安面) 읍내에서 진행된 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거주하던 지역의 주민 및 지인 김종석(金鍾奭)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읍내에 진입해 시위 운동을 벌였다. 직접 이웃들을 이끌고 왔다. 서울에서 제작된 독립선언서가 2월 28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 산양리 교회당에 전달되어 군내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먼저 배포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교회 조직을 중심으로 연백군 내 각 지역으로 독립선언서에 관한 내용이 전달되었다. 동시에 만세 운동 참여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3월 1일을 기점으로 연백군에서 바로 만세 운동이 전개된 것은 아니었으나, 독립선언서의 내용과 취지는 이미 교회 조직과 마을 주민들에게 충분히 공유되었다. 3월 13일 연백군 연안 읍내에서 만세 운동 계획이 탄로나 저지되는 등 연백군에서도 3·1운동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당시 시골 벽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는 만세 운동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복심법원 판결에 반박해 상고하면서 민족대표 33인이 선언서를 인쇄해 전국 각 도·군에 전파해 독립을 선언한 사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독립에 대해 기뻐하며 만세를 외쳐야 한다는 것은 마땅한 일이자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만세 운동의 내용과 취지에 크게 공감하여 평소에 뜻을 같이 하던 봉북면 용남리 주민 김종석과 함께 마을 주민을 규합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15일 연백군 봉북면 원동리 주민 약 15명을 이끌고 만세 시위를 위해 연안읍내로 이동하였다. 연안 읍내로 이동하는 길에 봉북면 동광리 주민들도 대열에 합류하였다. 오후 2시 무렵 연안읍 동문 밖에 도착한 봉북면 주민 약 30명은 떡과 물로 허기를 채우면서 만세 운동을 시작하기 전 의지를 다졌다. 오후 3시가 넘어 연안 읍내로 진입한 봉북면 주민들은 구한국 국기를 앞세우고 주도자들의 선창에 따라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읍내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에 곧바로 일제 헌병이 출동해 주도자 역할을 하였던 9명을 체포하면서 군중은 해산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시위 과정에서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4월 29일 평양복심법원 판결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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