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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곤

金道坤

1890. 10. 25 ~ 1947.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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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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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경상북도 청도군 대성면 일본인 구타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0년 10월 25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 청도읍) 내호리(內湖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가옥(金可玉)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간 3·1운동은 3월 중순 이후부터는 청도군을 포함한 경북의 여러 지방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청도군에서는 3월 11일부터 5월 초순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대체로 매전면, 대성면, 운문면, 화양면의 순서였다. 시위는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준비되었다. 예컨대 대성면 유호리의 경우 장로교회 조사(助事) 김보곤(金寶坤)이 주도하여 시위를 계획하였으며, 운문면에서는 문명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조직되었다. 이처럼 사전에 계획되고 조직된 만세 시위와 달리, 일부에서는 일제의 폭력에 맞서다가 충돌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운문면에서는 시위 주도 인물의 모친을 체포하러 온 일본 경찰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성면 유호리에서도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에 직접 관여하였다. 5월 7일 대성면 유호리에 있는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미즈노 기타로(水野喜太郞)·야마구치 토라오(山口虎雄)·미치타 사쿠타(充田作太) 등 일본인 세 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집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독서가 방해된다며 이종현(李鍾鉉)이라는 아이의 입술을 칼로 베어버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에 분노한 이종현의 형 이종학(李鍾學)과 김영곤(金永坤) 등의 마을 청년 20여 명과 함께 세 일본인을 구타하고 중상을 입혔다. 이것이 이른바 대성면 일본인 구타 의거이다. 이 사건에 가담한 20여 명의 청년 중 5명이 소요 및 상해, 건조물 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무수(李武壽)·허곤도(許坤道)와 함께 1919년 7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태(笞) 90대의 형을 선고받았다. 대성면에서의 만세 운동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현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시위에 직접 참여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서 위 사건을 ‘최후의 폭동’으로 규정하였을 정도로 5월까지도 만세 운동의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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