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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길

金道吉

1898. 1. 3 ~ 198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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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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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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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8) 1898년 1월 3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리(眞坪里, 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진평리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인동면에서는 1919년 3월 12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1차 시위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현 계성중고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영식은 3월 7일 독립선언서 20장을 들고 이내성(李乃成)과 함께 진평리 이상백(李相栢, 相伯)의 집에 찾아갔다.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건네며 전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일으킬 것을 촉구하였다. 3월 12일을 거사 일로 정한 이들은 동지를 모으는 한편 태극기를 만들고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마을 곳곳에 붙이면서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2일 저녁 8시경 200~300명의 군중과 함께 마을 뒷산에 올라가 만세를 불렀다. 진평리 시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이영식과 같은 계성학교 학생으로서 고향인 진평으로 들어와 2차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곳 청년 유지였던 박봉술(朴鳳述)·김성윤(金性允)과 함께 만세 운동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3월 14일을 거사 일로 정하고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4일 밤 9시경 마을 주민 200여 명을 이끌고 마을 뒷산 기슭으로 올라가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8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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