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식
金道式1889. 5. 16 ~ 1923. 12.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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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9년 5월 16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박곡동(朴谷洞)에서 태어났다. 김도식(金道植)이라는 이명도 있다. 안평면의 만세 운동은 대사동(大司洞) 우리골(尤利谷)에서 처음 시작되어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이어졌다. 15일 저녁 7시경부터 김옥돈(金玉頓)과 이종출(李鍾出)·이화실(李華實) 등이 주도하는 가운데 60~70명의 교인과 주민들이 시위를 전개하였다. 16일에는 50~60명의 교인과 주민들이 경찰주재소로 행진하며 만세를 외쳤다. 17일에는 400여 명의 군중이 경찰주재소 앞에서, 그리고 18일에는 300여 명의 군중이 대사동·마전동(馬轉洞)·창길동(倉吉洞)·박곡동(朴谷洞)·괴산동(槐山洞) 등 안평면의 곳곳을 행진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화실 등의 권유로 18일 만세 운동에 처음으로 참여하였다. 19일은 도리원(桃李院)시장의 장날이었다. 김옥돈과 이종출 등은 장날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규합하고 여세를 몰아 의성경찰서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도리원시장을 향해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의 시위는 참가자가 1,000명 이상이나 되었다. 그는 이날 시위에서 경찰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시위 대열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인해 권해운(權海雲)이 사망하고 또 8명이 상해를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때 순사가 휘두른 총에 얼굴을 맞아 부상을 입었다. 대구에 주둔하던 일본군 80연대는 의성군에 출동하여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주도 인물로 지목된 51명을 붙잡았다. 이 중 26명이 재판을 받았다. 1919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동년 6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동일한 형량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인물 중 이양준(李良俊) 다음으로 높은 형량이었다. 출옥 직후인 1923년 12월 14일에 사망하였다. 당시 나이가 30대 초반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감옥 생활 중에 겪은 고초가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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