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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金敬根

188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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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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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원산(元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원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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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정단
  • · 정의부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8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함경남도 원산(元山) 출신이고, 이명은 김경근(金京根)이다. 3·1운동을 전후하여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의 펑톈성(奉天省) 푸쑹현(撫松縣)을 근거지로 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무장 항일운동 단체인 광정단(匡正團)에 가입한 후, 김재풍(金在豊), 김황담(金璜橝)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는 모연대원(募捐隊員)으로 활동하였다. 광정단은 1922년 흥업단(興業團)·군비단(軍備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 등이 통합하여 만든 단체다. 1922년 9월 중순 함경남도의 북청(北靑)·홍원(洪原)·단천(端川) 3개 군을 무대로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북청에 잠입하였다. 북청군 가회면(佳會面) 중리(中里)에 거주하는 김황담의 형제인 김형담(金瀅橝)의 집에 잠복하며 그 지역 부호를 찾아가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이후 김재풍과 함께 무사히 광정단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부상으로 치료 중이던 김황담이 체포되면서, 이 소식이 『매일신보』에 알려지게 되었다. 1924년에는 정의부 모연 소대장에 임명되어 푸쑹현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7월에는 정의부의 지방 행정위원 중 하나인 푸쑹(撫松) 지방의 서기가 되어 총관(總管) 김성무(金城武), 검무원(檢務員) 김중엽(金仲燁) 등과 활동하였다. 이어서 정의부 백산(白山) 지방의 행정위원이 되어, 창바이현(長白縣)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에는 제1중대 제2소대장이 되었다. 같은 해 8월 무렵 소대원인 이제우(李濟宇)와 최산호(崔山虎)에게 일본 헌병의 밀정 노릇을 하던 길성룡(吉成龍)과 전모(全某)의 처단을 명령하였고, 두 사람은 밀정들을 산으로 끌고 가 처단하였다. 이후 백두산과 인접한 지역인 안도총관부(安圖摠管部)의 소대장이 되었고, 1927년 1월에는 결빙기를 이용해 부대원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7년 7월경에는 창바이현 일대에서 유격전 형태의 활동을 이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관병들이 독립군을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상황에서, 압록강 일대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던 그의 부대를 토벌하려는 혜산진(惠山鎭) 경찰서의 움직임이 분주하였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특히 밀정 때문에 독립군의 피해가 커지고 있었기에 밀정들을 처단하여 본보기를 보여준 후, 군자금 모금 활동을 계속키로 하였다. 그래서 1928년 (음)6월 26일경에 부하인 이제우 등과 함께 중국 관병의 밀정인 강영섭(姜永燮)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이제우 등은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1920년대 말 정의부는 참의부(參議府)·신민부(新民府)와 통합하는 데 실패하였으나, 1929년 국민부(國民府)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국민부 산하에 조선혁명군이 편성되었고, 국민부를 이끄는 당 조직으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이 결성되었다. 조선혁명군에 소속되어 창바이현과 린장현(臨江縣)에 주둔하는 제2반 10대의 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부터 일본군과 괴뢰 만주국군을 상대로 끈질기게 항전을 이어 갔으나, 1933년 5월 이후 일만(日滿) 연합군의 거센 반격으로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1933년 8월경 부하들과 함께 압록강 연안으로 이동하여 활동을 이어갔으나, 1934년 이후 총사령관 양세봉(梁世奉)과 고이허(高而虛) 등이 사망하면서 점차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김경근도 일만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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