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빈
金德彬188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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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83년경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석성면(石城面, 현 부여읍) 현북리(縣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37세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충남 부여 일대에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고 각지에 배포하였으며, 한국 독립 관련 연설을 하였다. 부여의 3·1운동은 김태호(金泰昊)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며 움트기 시작하였다. 3월 2일 오후 6시경 논산의 천도교구실에서 민영순(閔永淳)이 독립선언서 약 40매를 둘로 묶어 김태호·이백순(李伯淳)에게 전달하였다. 김태호는 한 묶음을 가지고 부여 천도교구실로 향하였다. 이곳에서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최규석(崔奎錫)에게 독립선언서 배부 관련 사항을 알렸다. 최규석은 선언서 10매를 한밤중에 부여면과 은산면(恩山面) 일대에 배포하였다. 3월 3일 오전 2시경 황우열에게 선언문을 전달받은 조원상(趙元祥)은 그중 2매를 부여면 일대 도로에 뿌리고 오전 5시경 그의 집을 찾아왔다. 이때 조원상으로부터 독립선언서 3매를 받았다. 선언서의 취지에 공감하여 2매를 부여면 염창리(鹽倉里) 길 위에서 배포하였고, 1매를 초촌면(草村面) 신암리(莘巖里)에 거주하는 강면기(姜勉基)에게 전달하였다. 부여 지역은 선언문이 배포된 직후 만세 운동이 전개되지는 못하였지만 이후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3월 6일부터 만세 운동을 전개하면서 공주(公州)·홍성(洪城)·서천(舒川)·논산(論山)으로 3·1운동의 파급력을 확대하였다. 독립선언서 배포 명목으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笞刑) 60대를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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