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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학

金道學

187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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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도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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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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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70년경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축산면(丑山面) 상원동(上元洞)에서 태어났다. 한편 자료에 따르면 1872년 8월 25일생이라는 의견도 있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영해면 성내동의 3·1운동은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교회의 조사(助事)로서 교회의 도움을 받아 평양신학교 유학길에 올랐던 김세영(金世榮)에 의해 비롯되었다. 김세영은 서울에 도착하였을 때 거국적인 만세 시위를 직접 목격하고는 유학을 포기한 채로 고향에 돌아와 3월 12일 낙평동교회의 구세군 참위로 있던 권태원(權泰源)을 만나 만세 시위를 제안하였다. 이튿날인 13일에 김세영은 일본 경찰의 예비검속에 검거되었다. 그러나 권태원은 김세영의 말에 따라 병곡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교회의 조사인 정규하(丁奎河)와 함께 만세 시위 계획을 구체화하고 동지들을 규합해나갔다. 3월 18일 성내동장터에는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정규하·남여명(南與明)·권영조(權永祚)·박희락(朴羲洛)의 선창에 따라 장터의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행진하던 시위대는 영해경찰주재소,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공립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습격하여 기물을 파손하였다. 만세 시위 발발 소식을 접한 영덕경찰서장은 순사 이하 4명을 인솔하고 성내동으로 가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서장의 해산 명령에 일부 군중은 오히려 곤봉을 휘두르거나 기왓장을 던지며 맞섰다. 또 일부는 결국 철수를 선택한 서장 일행의 뒤를 쫓기도 하였다. 다른 군중과 함께 축산면 상원동의 최수경(崔壽敬) 집 부근에서 서장 일행의 제복, 제모, 패검, 총기를 훼손하였다. 또한 서장을 비롯한 일행의 전신에 십여 군데의 상처를 입혔다. 이후 일본 군경의 만세 시위 주도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과정에서 붙잡혔다. 사법경찰의 심문에 대해 “김주득(金周得)·윤봉산(尹奉山) 등이 영해에서 철수하는 순사를 붙들려고 하였으나 순사들이 뛰어가는 것을 붙들지 못하였는데, 그때 나는 솔잎을 소에 싣고 돌아오는 도중에 이와 마주쳐 약 10간 쯤 앞에서 소지하고 있던 낫을 순사 2명 사이로 던졌으나 적중시키지는 못하였다”라고 진술하였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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