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金東奎1876. 1. 2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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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76년 1월 29일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안수면(安水面) 수상리(水上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병규(金秉奎)이다. 풍산군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0일부터 준비되었다. 강희준(姜熙俊)으로부터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상황을 전해 들은 김병식(金炳軾)과 천도교 풍산교구 봉훈(奉訓) 맹시정(孟始楨)이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맹시정과 김병식은 풍산 천도교의 중심 인물인 박인진(朴寅鎭)과 논의를 통해 3월 14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14일 이인면(里仁面) 신풍리(新豐里)에 있는 천도교 풍산교구에서 200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회합하였다. 이들은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때 일제 경찰이 천도교당 안으로 진입하여 강제 진압을 시도하였다. 천도교인들은 독립 만세를 외치며 헌병분견소 앞까지 진출하여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이에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며 진압을 시도하였다. 헌병들의 행동에 분개한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안으로 진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병기를 탈취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를 향해 헌병들이 발포하면서, 2명의 사망자와 1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3월 14일 만세 시위 이후 풍산군에서 다시 만세 시위가 일어난 것은 3월 20일 안수면 수상리였다. 14일 만세 시위 과정에서 헌병들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한 것에 격분하여, 같은 마을 사람인 한주호(韓周鎬)와 함께 20일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20일 한주호와 함께 안수면 수상리의 주민들을 선도하면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100여 명의 시위대는 안수면의 면소재지인 평산리(平山里)로 향하였다. 평산리의 헌병분견소 앞에 집결한 시위대는 14일 만세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헌병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1919년 5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판결을 받고 항소하였다.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동년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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