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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金東壽

1865. 10. 10 ~ 1931.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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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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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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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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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865년 10월 10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용주면(龍洲面) 장전리(章田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우은(愚隱)이다. 1919년 당시 54세였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학맥에 속한 유림이다. 3·1운동의 준비 단계였던 1919년 2월, 최린(崔麟)·최남선(崔南善)·송진우(宋鎭禹)·현상윤(玄相允) 등은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려는 목적으로 각계의 명망가들을 포섭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때 접촉한 유림계 인사로서 김윤식(金允植)·곽종석·윤용구(尹用求) 등이 있었다. 김윤식은 독립선언보다는 독립청원에 적극적이었다. 곽종석은 참여 의사를 다소 늦게 밝혔고, 윤용구는 거절하였다. 게다가 전통 유림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동학과 불교 등도 이단시하였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사정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계 인사들은 「기미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으로 이름을 올린 반면, 유림계 인사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유림은 민족대표 33인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광무황제(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는 이러한 분위기를 귀향과 동시에 각 지역에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크게 일어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방식 외에 유림이 3·1운동에 참여한 사례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립청원서 운동(파리장서운동, 제1차 유림단의거)이다. 서울에서의 3·1운동을 직접 목격한 김창숙(金昌淑)은 당시 영남유림의 종장(宗匠)이던 곽종석에게 그 분위기를 전달하였다. 그들은 유림이 중심이 되어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이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는 국제적 운동을 모색하였다. 이 와중에 같은 유림인 김윤식과 이용직 등이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를 일본에 제출하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들의 의지는 더욱 확고해진 것처럼 보인다. 1919년 3월 3일 김창숙 외 6명이 회합을 갖고 각각 지역을 나누어 연락하기로 결정하였다. 강원과 충북은 이중업(李中業), 충남과 충북은 김정호(金丁鎬), 경기와 황해는 성태영(成泰英), 전남과 전북은 류준근(柳濬根), 함남과 함북은 윤중수(尹中洙), 평남과 평북은 유진태(兪鎭泰), 경남과 경북은 김창숙이 담당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척사(斥邪)의 기준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을 각기 달리하였던 전국의 유림을 하나로 규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초 「독립청원서」는 영남유림인 장석영(張錫英)과 김황(金榥)이 초안을 작성하여 김창숙이 마무리한 ‘곽종석본’이 최종안으로 유력하였다. 그런데 기호유림에서도 김복한(金福漢)을 수석 서명자로 하는 ‘김복한본’을 작성한 상태였다. 두 유림은 기한이 촉박하고 또 ‘곽종석본’이 더욱 충실하다는 점을 들어 ‘곽종석본’을 단일안으로 채택하고 양쪽 서명자의 명단을 통합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총 137명의 서명이 포함된 「독립청원서」가 완성되었으며, 이때의 서명자 137명을 ‘기미유림단(己未儒林團)’이라고 부른다. 「독립청원서」는 일제가 명성황후와 광무황제를 시해하고 한국의 주권을 침탈하였음을 폭로함으로써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북 성주에서는 15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서명에 참여하였다. 적을 두고 있던 경남 합천에서는 9명이 서명하였는데, 이는 성주와 대구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133번째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합천에서는 3월 18일부터 23일에 걸쳐 매일 만세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 규모 역시 3,000명에서 1만 3,000명에 이를 정도로 매우 컸다. 스승 곽종석과의 의리는 물론 이와 같은 독립 열기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을 것이다. 1931년 9월 29일에 사망하였으며, 저작으로는 『우은유고(愚隱遺稿)』가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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