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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金東植

1883. 9. 30 ~ 1942.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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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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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중화(中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중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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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3년 9월 30일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풍동면(楓洞面) 노동리(蘆洞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에는 평남 중화군 상원면(祥原面) 직현리(直峴里)에 살고 있었으며, 천도교 교인으로 공선원(共宣員)이었다. 1919년 3월 1일 중화대교구 전도사 유영환(劉永煥)은 독립선언서를 중화군 상원면의 천도교 교구실로 가져와 주요 교도들을 모아놓고 독립을 위한 활동을 권유하였다. 이 자리에 천도교도인 이동흡(李東洽)·주영(朱英)·윤태홍(尹泰弘)·박성규(朴聖奎) 등과 함께 참여하여 즉시 승낙하고 의논을 거쳐 2일에 만세 시위를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2일 교구실에서 천도교도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다가 약 200명의 교도가 모이자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그 취지를 설명한 뒤 독립 만세를 함께 외쳤다. 그 뒤 독립선언서를 읍내에 배포하고, 이동흡과 박성규에게 경찰주재소 앞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동흡과 박성규는 그 자리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고, 중화경찰서장 다카나와 기쿠치(高索菊治)와 순사부장 다무라 사부로(田村三郞)가 이동흡을 데리고 교구실로 와 해산을 명령하였다. 해산에 불응하자 경찰이 강제해산을 시도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동흡·김진영(金振榮)·김병준(金炳俊)·김병균(金炳均)·김병택(金炳澤)·박태순(朴泰淳)·양태호(梁泰浩)·최용원(崔龍源) 등과 함께 천도교도들을 지휘하여 경찰들을 포위하고 그들이 휴대한 칼을 빼앗은 뒤 돌과 몽둥이로 공격하였다. 결국 경찰들이 도망치자 이동흡 이하 8명과 함께 교구실에서 나와 다른 천도교도들을 지휘하여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사무실을 공격하였다. 순사부장 다무라가 총을 쏘면서 저항하였지만 돌과 몽둥이를 이용해 경찰주재소를 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중화경찰서장 다카나와를 포박하였다. 그러나 지원을 나온 평안남도경무부 소속 경찰의 공격으로 탈취하였던 무기를 빼앗기고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6월 2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고,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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