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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金東鎬

1894. 3. 18 ~ 197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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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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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咸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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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3월 18일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 지곡면(池谷面) 남효리(南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호는 백죽(栢竹)이다. 함양군 안의면(安義面) 안의읍(安義邑)의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25일 계획되었다. 먼저 안의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자는 방을 써서 수동면(水東面) 상백리(上栢里) 주막집 앞길에 붙였다. 하지만 경계가 삼엄하여 더는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후 안의시장 독립 만세 시위는 서하면(西下面)과 지곡면(池谷面)의 뜻있는 청년들이 계획하였다. 이들은 안의읍 장날인 3월 31일을 거사 일로 정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동지를 규합하는 등 사전 준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의거에 참여하려고 3월 31일 일제 경찰이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는 가운데 안의시장으로 나갔다. 오후 1시 주동 인물들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주자, 일본 경찰은 이들 중 5명을 급히 체포하였다. 주동 인물들이 체포되는 와중에도 오후 2시경 다시 태극기가 배포되고 대한 독립 만세의 선창이 울려 퍼지자 시위 대열에 참여하여 1,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일제히 깃발을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기’라고 쓴 깃발을 흔들며 오후 7시까지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면서 연행된 주동 인물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기세에 놀란 일제 경찰의 지원 요청에 따라 일본군 거창수비대의 중대장 이하 20여 명이 출동하여 무력을 행사하면서 시위 군중을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9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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