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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성

金斗星

1902. 3. 15 ~ 199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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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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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황주(黃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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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902년 3월 15일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구성면(九聖面) 화동리(和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종교는 천도교이다. 1919년 3월 1일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의 천도교구 교인인 최창룡(崔昌龍)이 황주교구에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 10매를 전달하였다. 교구장 김성준(金聲俊)은 황주면 천도교의 황기타(黃己拕) 등과 논의하여 다음 날인 3월 2일에 남천시장(南川市場, 황주시장(黃州市場))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황주면 장날인 3월 2일 남천시장 곳곳에는 독립선언서가 나붙었다. 오후 2시경 황주면뿐만 아니라 구락면(龜洛面)·구성면·도치면(都峙面)·삼전면(三田面)·송림면(松林面)·인교면(仁橋面)·천주면(天柱面)·청룡면(靑龍面)·청수면(淸水面)·흑교면(黑橋面) 등 황주군의 대부분 지역에서 온 수백 명의 군중이 남천시장에서 회집하였다. 교구장 김성준의 통지를 받고 본 교구로 가서 민족의 의무로써 시위에 참가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천도교인 시위대에 합류하여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황주 읍내를 두루 행진하며 시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경찰서 앞으로 행진하던 중, 선도대 강형섭(康亨燮)과 김병식(金炳植)이 경찰에 붙잡혔다. 시위대는 경찰서 앞에 집결하여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서 안으로 진입하여 유리창을 부수었다. 또한 한국인 경찰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도 하였다. 시위대가 기독교 예배당에 이르자 기독교인들이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더욱 커졌으며, 남천시장을 행진하면서 애국가를 부르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천도교인 시위대 200여 명과 함께 황주교구의 교구당에 모여서 휴식을 취하였다. 오후 5시경 경찰과 헌병들이 만세 시위 주동자를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천도교 황주교구의 교구당에 진입하여 시위대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80여 명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붙잡혀지역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 일로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함께 재판받은 55명과 함께 상급법원에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다시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다시 상고하였지만,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가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0년 황주군 구성면 황주군 학비(學費)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31년 6월 황주군 구성면 면의(面議)로 당선되었고, 1935년 6월에도 황주군 구성면 면의에 당선되었다. 1935년 9월 박태호(朴泰浩)·장재구(張載球) 등과 향리에 화동공립간이보통학교설립기성회(和洞公立簡易普通學校設立期成會)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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