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
金萬守1899 ~ 1920. 2.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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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1899년경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현 포항시) 청하면(淸河面) 유계리(柳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일일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22일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덕성리(德城里)시장에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영일군에서는 3월 중순 포항면 북본정(北本町)에서 1,000여 명의 시위대가 항거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영일군의 만세 운동은 주로 기독교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였으며, 교회 조직망을 시위에 활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3월 18일 기독교 장로 윤영복(尹永福, 송라면 대전리 거주)과 덕성리교회 영수 오용간(吳用干, 청하면 덕성리 거주) 및 기독교 교사 윤영만(尹永萬, 송라면 대전리 거주)은 3월 22일 덕성리시장의 장날을 이용한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윤영복과 오용간은 각각 큰 태극기 1개와 작은 태극기 20개를 만들기로 하고, 윤영만은 교인의 동원을 담당하는 등 사전 준비 작업을 진행하였다. 만세 시위 계획을 추진하던 오용간으로부터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참가하였다. 시위 당일에 윤영복과 오용간이 만세를 선창함으로써 시위를 주도할 때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며 나아갔다. 주변의 교인들과 주민들이 동참하면서 시위대는 점차 확대되었다. 경찰은 만세 운동 계획을 알리려고 시장으로 가던 윤영만을 검거하였지만, 만세 운동을 사전에 막지는 못하였다. 3월 22일 시위를 주도한 23명과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윤영복·오용간 등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고,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 직후인 1920년 2월 2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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