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金明洙1874. 10. 2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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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9) 1874년 10월 29일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산남면(山南面) 석막리(石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다. 천도교 갑산교구의 전교사(傳敎師)로 이 지역 천도교의 중심 인물이다. 1919년 3월 3일 3·1운동에 대한 소식이 함남 단천(端川)에도 전해졌다.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단천의 천도교 지도부는 인접한 갑산군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를 알리려고 파견된 최봉천(崔鳳天)은 8일 풍산군(豊山郡) 이인면(里仁面) 가재리(加財里)의 천도교구와 9일 갑산군 장평면(長平面) 서부리(西部里)의 교구를 각각 방문하여 3월 15일에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천도교 갑산교구의 전교사직을 맡아 보던 중 3월 11일 풍산군 안산면(安山面) 하지경리(下地境里)의 천도교구실에서 보내온 편지를 전달받았다. 갑산의 궐기를 촉구하는 편지에는 전국 각 마을의 천도교도는 ‘조선’을 독립국으로 할 목적으로 독립 만세를 부르는 시위 운동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갑산군 회린면(會麟面) 후지리(厚地里)에 가서 그곳 교도를 취합하고 이 취지의 문서를 보여서 뜻을 전하고 그날 운동을 실행할 것을 권유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문서를 받고 승낙한 후 12일에 후지리에 거주하는 정국태(鄭國泰)의 집에 가서, 정수웅(鄭秀雄)에게 위 문서를 제시하며 그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3월 15일 갑산 천도교구실에 모여 만세 시위를 거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정수웅은 갑산군 각지를 다니며 15일에 갑산교구 교당으로 모일 것을 호소하였다. 3월 15일 오후 2시경 장평면 서부리 천도교 갑산교구실에 김용균(金龍均)·노영태(盧潁泰)·박문옥(朴文玉)·정수웅·정수익(鄭秀益)·정창도(鄭昌道)·정창원(鄭昌元)·조내원(趙來源)·조병학(趙秉學)·조석준(趙錫俊)·조영호(趙英浩)·주남호(朱南浩) 등 200여 명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참석하였다. 조병학이 태극기를 게양하자, 군중은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어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청으로 향하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헌병들이 만세 시위를 저지하였지만, 시위대는 군청으로 진입하였다. 이를 저지하려 출동한 갑산군 혜산진(惠山鎭)의 헌병수비대와 일본 경찰이 합세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곧바로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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