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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도

金末度

1924. 12. 1 ~ 1969.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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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말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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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달성(達城)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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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12월 1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현풍면(玄風面) 부동(釜洞)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 일본 교토(京都)로 징용되어 토공(土工)으로 일하면서 항일 비밀결사 운동에 참여하였다. 교토부(京都府) 스즈키군(綴喜郡) 다나베정(田邊町)에 있는 시마무라토공숙소(島村土工飯場)에서 일하던 1941년 6월, 전경원(全京元)을 만나 한국인의 참된 자유와 행복은 독립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고 독립운동을 결심하였다. 전경원은 1939년 교토부 내의 국민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미야즈중학(宮津中學)을 졸업했으나, 한국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들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한인 노동자가 다수 합숙하고 있는 토공 생활에 뛰어든 인물이었다. 같은 해 9월경부터 전경원을 중심으로 동료 토공 윤성택(尹成澤)·김석용(金碩用)·이상문(李相文) 등과 함께 5명이 본격적으로 ‘그룹적’인 조직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1월 말까지 약 2년 반 동안 여러 명의 동지를 규합했으며, 교토부 요사군(與謝郡) 소재 미륵신사(彌勒神社) 경내(境內) 등에서 여러 차례 회합하면서 서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주로 민족차별 철폐, 징병제도 반대, 만약 입대하더라도 ‘적국(敵國)’으로 도피하여 독립을 위해 노력, 항공병(航空兵)에 지원해서 반대로 일본군 기지를 폭격하여 일본을 패전으로 이끎, 경찰관이 되어 한인 청년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 전개 등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이 내용을 보면, 이들은 일제의 동원정책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일제 패망과 독립을 준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약 3년 간 활동하다가 1944년 6월 일제 경찰이 토공 숙소를 수색하던 중 전경원의 일기장이 발견됨으로써 6월 14일 동료 토공들과 함께 붙잡혔다. 당시 일제 경찰은 이들의 조직 활동을 ‘교토조선인 토공민족주의그룹’이라고 불렀다. 같은 해 9월 25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교토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장기간의 미결 끝에 8·15 광복 이후인 1945년 9월 예심이 종결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형을 받고 풀려났다. 그해 10월 17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1945년 칙령 제579호 대사령」에 의거하여 사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9년 8월 4일 사망하였고, 1994년 3월 9일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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