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렬
金炳烈1892. 3. 26 ~ 194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덕천지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호굴독립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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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1) 1892년 3월 2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에서 김관수(金觀洙)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2년 9월 부친이 경북관찰부(慶北觀察府)의 주사(主事)로 임명되었으나 곧바로 사직하고, 1907년 일제 통감부의 한국군 강제해산 조치에 항의하여 봉기한 ‘정미의병(丁未義兵)’에 참가하였다. 이어서 부친은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에서 370명가량의 의병을 모집한 후 결사대를 조직하고 맹산군(孟山郡) 관아를 점거하는 등의 맹활약을 보였다. 그런 부친의 활동으로 인해 덕천군 지덕면(智德面)으로 이주한 후 1918년 사립 광명학교(光明學校)의 교사가 되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고도 한다. 서간도 류허현(柳河縣)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 박승엽(朴承燁)이 1919년 말에 덕천으로 잠입하여 유학자 정진원(丁進源)·이윤실(李潤實) 등의 협력을 얻어 1920년 4월경 비밀리에 지단(支團)을 조직하자 거기에 가담하였다. 인접한 맹산군과 영원군(寧遠郡)에도 두어 달 후에 지단이 조직되면서 3개 지단은 맹산군 옥천면(玉泉面) 북창(北倉) 서북쪽 선유봉(仙遊峰) 중턱의 ‘맹산 범굴(虎窟)’에 아지트를 구축하였다. 그 안에 폭약·도화선·뇌관과 권총, 3대의 인쇄기 및 1만 2,000여 개의 활자를 갖춰놓고 일제 관공서 습격·파괴와 무기 탈취, 경관 총살, 친일·부일배 처단, 경고문 및 격문 살포, 군자금 모금 등의 다대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의 탐문과 추적이 계속된 끝에 속칭 ‘호굴독립단’의 거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1921년 6월 초부터 300여 명 단원에 대한 대검거 선풍이 일면서 90여 명이 붙잡혀갔다. 그러던 중 비밀 단원인 전도사 이익수(李益壽)와 이능수(李能洙)가 찾아와 숨겨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태극면(太極面) 송산리(松山里) 자기 집 뒤의 채소종자 구덩이에 숨겨주었다가 이튿날 들이닥친 무장 경찰에 발각되었다. 그러자 급히 도피하여 동지 안흥섭(安興涉)의 어머니 집에 숨어 있다가 동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1923년 12월 2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죄목으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아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1946년에 중국에서 사망하였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1948년 7월 7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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