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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金丙洙

1862. 5. 2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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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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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길주(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길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1862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 양사면(暘社面) 신풍동(新豊洞)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함북 길주군은 천도교의 교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중앙 천도교의 3·1운동 계획을 전해들은 천도교 중심 인물인 김용수(金龍洙)가 주도하여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김용수는 길주 지역 천도교인 원세율(元世律)·이용서(李容瑞)·이태인(李泰仁)·전용희(全用熙) 등과 회합하고, 길성면(吉城面, 이후 길주읍)의 장날인 3월 12일 만세 시위를 결의하였다. 3월 12일 길성면 길북동(吉北洞)의 우시장(牛市場)에는 연락받은 천도교인과 장꾼 1,000여 명이 모였다. 전용희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시위대는 독립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읍성의 남문과 서문 밖에도 각각 500여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시위를 시작으로 13일 덕산면(德山面) 일신동(日新洞), 14일 동해면(東海面) 용원동(龍原洞), 15일 웅평면(雄坪面) 등 길주군의 남부와 북부 지역인 양사면으로 만세 시위가 확산되었다. 15일 양사면의 북부 양흥동(暘興洞)에서 이용규(李龍圭) 등이 3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합수헌병주재소(合水憲兵駐在所)로 몰려가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16일에는 양사면의 남부인 신풍동에서도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60여 명이 모여 전개한 이 날 시위에 참여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2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지만,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으며,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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