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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식

金炳植

188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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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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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황주(黃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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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황해도 황주군 황주읍 남천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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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85년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황주면(黃州面) 성남리(城南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음식점을 운영하였다. 1919년 3월 1일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출신의 천도교도인 최창룡(崔昌龍)이 황주에 도착하여 천도교 황주교구 교구장 김성준(金聲駿)을 만나면서 황주군의 만세 시위가 준비되었다. 최창룡은 서울의 만세 시위에 관한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김성준은 천도교도인 황기타(黃己拕) 등과 논의하여 황주면의 장날인 3월 2일 남천(南川)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황기타가 독립선언서 배포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또한 황강리(黃崗里)의 김광섭(金光燮)과 최석길(崔錫吉), 성남리의 김병식, 벽성리(碧城里)의 조진영(趙鎭永) 등 황주면 천도교의 주요 인물들에게 만세 시위 계획을 알렸다. 3월 2일 오후 2시경 남천시장 곳곳에는 독립선언서가 나붙었고, 천도교도가 중심이 된 수백 명이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강형섭(康亨燮) 등과 함께 선두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었고, 장꾼들이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만세 시위의 규모가 증가하였다. 시위대는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찰서 앞으로 행진하였다. 그때 선두에서 만세 시위를 선도하다 강형섭과 함께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에 시위대는 경찰서 앞으로 가서 체포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서의 유리창을 부수었다. 또한 한국인 경찰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주기도 하였다. 이후 기독교 예배당까지 행진한 시위대는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정돈하였다. 또한 만세 시위의 취지를 설명하여 기독교도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만세 시위의 규모는 더욱 커졌고, 이들은 남천시장을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오후 5시경 일제 경찰과 헌병들은 만세 시위 주동자를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천도교 황주교구실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황주면의 황기타·최석길·조진영, 천주면의 김희걸(金稀杰)·윤후영(尹厚榮), 송림면의 김시원(金始圓)·나희풍(羅喜豊), 구락면의 지봉서(池鳳瑞), 구성면의 채보선(蔡寶善), 삼전면의 최하석(崔河錫), 인교면의 최찬형(崔賛衡), 청룡면의 임재창(林在昌), 청수면의 표정일(表正一), 흑교면의 권만일(權萬鎰), 도치면의 박동일(朴東日) 등 80여 명의 천도교도를 검속하였다.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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