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
金秉憲1884. 3. 1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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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6) 1884년 3월 13일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용연면(龍淵面) 용정리(龍井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활동 당시 본적 및 주소지는 장연군 장연면(長淵面) 죽계리(竹溪里)였다. 한국이 독립하려면 먼저 친일파를 모두 처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1920년 1~2월 중에 장연에서 최창한(崔昌翰) 등과 함께 암살단을 꾸려서 한국인 순사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려는 세부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먼저 평소 술자리 등으로 친분이 있던 순사 가운데 친일적인 순사들을 총살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자 노력하였다. 장연 출신의 최창한은 만주에서 조맹선(趙盟善)을 단장으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으로서, 국내로 들어와 당시 장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역시 대한독립단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21년 1월 28일부터 거사를 논의하려고 최창한·조정진(趙鼎鎭)과 함께 장연 읍내 조정로(趙定魯)의 집에 함께 잠복해 있었다. 다음날인 1월 29일 1919년에 ‘정치범’으로 투옥되었다가 나와서 다시 독립을 위한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을 목적으로 장연 읍내로 들어온 장규황(張奎皇)·장선봉(張仙鳳) 등을 만나 구체적인 방법을 협의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그날 밤 읍내 거주 백최헌(白最憲)의 집으로 술자리를 빙자하여 장연경찰서 형사순사 하동일(河東一)과 특무순사 강규영(姜奎永)을 불러서 서로 환담을 나눈 후 이들이 돌아가는 길에 총살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암살단을 꾸리고 각자 세부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실행에 옮기려고 기다렸으나 순사들이 끝내 오지 않아 일단 당일 계획은 중지시켰다. 이후 다시 처단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그해 1월 31일 백최헌에게 상세히 계획을 설명한 후 여러 차례 비밀회의를 거듭하였다. 처단 대상인 순사 하동일과 강규영을 유인할 장소로 조만흥(趙萬興)의 집으로 변경하고 다시 순사들을 초대하려고 하였다. 백최헌과 조정진이 길거리에서 하동일을 만나 술자리를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권총을 소지하고 있던 최창한에게 알리자, 그는 하동일을 부근 한증막 앞으로 끌고 가서 권총을 발사하였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고 결국 미수에 그쳤다. 다음 날인 2월 1일에도 계속 계획을 실행하려 하였다. 읍내에서 ‘하동일 살해 미수 사건’에 대한 경찰서의 수사 상황을 탐지한 후 이들은 서로 도우면서 도주를 계속하였으나 결국 동지들과 함께 장연경찰서에 붙잡혔다. 당시 최창한은 붙잡히지 않았으며, 10월경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이후 중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1921년 4월 2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동지들과 함께 항소를 제기하였다. 10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5년 형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4년 징역 3년 수개월로 감형되었으며, 1925년 2월 27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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