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
金炳旭1888 ~ 1925.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한청년회 설립 주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이명은 김병욱(金秉旭)·김병욱(金炳郁)이다. 자신이 동명의 여러 한자 이름을 쓴 것이 아니라 일제의 첩자들이 보고할 시 동음이어를 쓴 것으로 판단된다. 1888년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에서 출생하였다. 가족관계 및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정확히 알기 어렵다. 만주로 넘어 간 시기와 과정 또한 알기 어려우나 활동 주근거지였던 창바이현(長白縣)의 경우 함경도 출신의 민족운동자들이 대거 망명해 독립운동 기지를 개척하고 독립군단(獨立軍團)을 결성한 지역이었다. 이 같은 경향이 있었기에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창바이현으로 건너가 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독립군단 성립에 참여하고 초창기부터 간부로 활동한 것으로 판단된다. 1921년경 창바이현 19도구(道溝) 삼포동(三浦洞)에 근거지를 구축한 광복단(光復團) 지단(支團)의 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광복단은 김성극(金星極)·홍두식(洪斗植) 등이 주도해 1920년 안투현(安圖縣)에 설립한 독립군단이다. 본부를 설립한 후 창바이현에 지단을 설치했는데 그 조직을 지휘했던 것이다. 광복단 지단은 본부에 속한 하부 기관이었으나, 자체적으로 160여 명의 단원과 장총·권총 등 상당한 무기를 보유하고 독립적으로 항일 무장활동을 펼쳤다. 창바이현은 많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산간오지였다. 따라서 농사를 짓기에는 불편하였으나 침략자 일제의 공격을 피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독립군단을 편성하기에는 상당히 유리한 곳이었다. 게다가 한중 국경지방이었기에 준비만 갖추면 언제든 국내 진입 유격전을 펼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창바이현에는 광복단 지단 이외에도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대진단(大震團) 지단, 흥업단(興業團) 지단, 태극단(太極團) 등의 독립군단들이 근거지를 구축하고 항일 활동을 펼쳤다. 이들 중 1921년 5, 6월경 태극단의 일부가 광복단에 병합되었다. 이후 광복단은 창바이현 내의 8, 12, 17, 20도구 등 넓은 지역에 분단(分團)을 설치하고 상당한 세력을 가질 수 있었다. 창바이현 내 이들 여러 독립군단은 각자 조직을 편제해 독립적으로 활동했으나 상호 협력해야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사항은 힘을 합쳐 추진해나가기도 했다. 1922년 1월 8일 각 군단의 대표가 군비단의 사무소가 있는 16도구 대덕수(大德水)에 모였다. 이 회의에 광복단 대표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군비단장 윤덕보(尹德甫), 군비단 군사부장 이병율(李秉律), 흥업단장 김창일(金昌一), 흥업단 재무원(財務員) 강시명(姜時明), 대진단장 김용(金容) 등과 논의해 신한청년회(新韓靑年會)라는 공동의 독립군 양성기관을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이 신한청년회는 각 군단의 근거지가 있는 17, 18, 19도구에 형성된 한인 사회에 거주하는 14세 이상 25세 이하의 한인 청년들을 가입시켜 지덕체(智德體)가 함양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 독립군 인재로 양성하는 목표를 가졌다. 1924년 초에는 광복단 지방대장(地方隊長)에 선임되었다. 1922년 3, 4월 중 창바이현 내에 근거지를 가진 독립군단들은 통합운동을 벌여 광정단(光正團)을 성립시킨다. 즉, 대한독립군비단·흥업단·대진단·태극단의 일부 등이 통합해 통합군단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일부 광복단 지단원도 참여하지만, 나머지 잔류 세력은 통합에 참여하지 않고 군단을 유지하며 활동했다. 독립군 사령관으로 탁월한 능력을 지닌 김석태(金錫泰)라는 인물이 지단장이 되어 광복단을 이끌었기에 독자적인 길을 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에도 약 100명에 가까운 독립군을 유지하며 무장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말부터는 총무로 선임되어 광복단 지단을 이끌었다. 한편 광정단은 1924년 11월 24일 남만주(南滿洲) 지역에 근거지를 가진 통의부(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 등 다른 7개 독립운동 단체와 합병해 정의부(正義府)라는 대규모 통합 단체를 성립시켰다. 하지만 이때도 광복단 지단은 통합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안투현에 본부가 있었기에 다른 단체와의 통합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광복단 지단은 1925년 초 약 40명의 독립군을 보유하며 활동한 것으로 일제의 보고문서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후의 행적은 자료의 한계로 아직까지 알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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