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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식

高仁植

190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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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고인식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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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비단
  • · 태극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8) 1901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신지는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진면(眞面) 향천동(香川洞)이며, 이명(異名)과 본관(本貫) 및 가족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대한독립군비단에 가입하여 독립 투쟁을 벌였다. 대한독립군비단은 함경남도 혜산진(惠山鎭) 건너편 창바이현(長白縣)에서 이희삼(李熙三)·이동백(李東白) 등이 조직한 단체이며, 각 지역에 지단(支團)을 설치하였다. 1921년경 부대원들과 함께 본거지를 창바이현 8도구 독암리(獨岩里)로 이전하고, 이영식(李永植) 부대에서 제1소대장을 맡았다. 1921년 7월 6일에는 평북 후창군(厚昌郡) 서례령(西禮嶺)에서 일본군과 1차 전투를 벌였다. 새벽 무렵 강을 건너 후창 구읍으로 향하다가 중 아침 8시경 서례정 통로에서 일본군 1소대와 충돌하였고 11시경까지 격전을 벌여 일본군 41명을 사살하고, 총기 49정 등을 획득하였다. 이후 7~8월에 걸쳐 이영식을 중심으로 구성된 군비단 유격대의 일원으로 평북 후창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같은 달 8일에는 함남 장진(長津)으로 들어가 메물령 주변 일본군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여 헌병 5명을 사살하고, 한국인 순사 2명은 복귀시켰다. 이후 같은 군 삼포(三浦) 지방의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였으나, 일본군이 유격대의 습격을 눈치 채고 도주하였다. 대신 여기에 체포되어 있던 50여 명을 구출하였다. 이들의 공격에 대비하려고 위해 일본군과 경찰이 병력을 증강하자, 의용군의 활동 구역을 나누어 이영식에게 장진·삼수(三水)·풍산(豊山) 등지를 맡게 하고, 안용도(安瑢道)·김낙걸(金洛杰)은 함흥(咸興)·홍원(洪原)·신흥(新興)·북청(北靑) 등지를 맡게 하였다. 7월 18일 부대원을 이끌고 황해도 각지로 이동하였고, 25일에는 함남 장진과 평북 강계(江界)의 경계인 아득애령(我得愛嶺)에서 일본군 정찰대와 접전을 벌였다. 이후 태극단(太極團)의 일원으로 김계필(金啓弼)·최경삼(崔景三)·신동학(申東鶴)·손경석(孫慶石)과 함께 권총과 폭탄을 휴대하고 평남 영원(寧遠) 박효선(朴孝善) 집 등 10여 곳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평남 지역뿐만 아니라 함남·함북·강원으로 이동하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1922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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