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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필

金東弼

1860. 10. 6 ~ 194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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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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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永川)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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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십삼도유약소
  • · 자신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0년 10월 6일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신녕면(新寧面) 신덕동(新德洞)에서 태어났다. 1905년 1월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이 되었다. 같은 달 민영환(閔泳煥)의 측근 이준(李儁)·김인식(金寅植) 등과 함께 대한십삼도유약소(大韓十三道儒約所)를 설치하고 일본의 침략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경현수(慶賢洙)·이봉학(李鳳學)·강원형(姜遠馨)·이인순(李麟淳)·이상린(李相麟)·유동희(柳東熙)·이식(李侙)·현학표(玄鶴表) 등의 유생들과 함께 을사늑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같은 해 9월 26일에는 각국 공사관에도 글을 보내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이후 매국단체 일진회(一進會)를 규탄하는 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달에는 을사늑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대한십삼도유약소의 동지들과 함께 연명으로 올리는 한편,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앞으로 장서를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현학표 등과 함께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과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을 처단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붙잡혔는데, 이것은 일진회에 대항하여 상소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1906년 5월 평리원(平理院)에서 심리한 결과 방면되었다. 1907년 2월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 등과 함께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을 처단하고자 하였다. 당시 박대하(朴大夏)·이홍래(李鴻來) 등과 비밀리에 의병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나인영 등의 동정을 전해 듣고 이홍래와 박대하를 추천하면서 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획에 김인식(金寅植)·김영채(金永采)·이광수(李光秀)·이용태(李容泰) 등이 협조해 경비를 마련하였고, 이기(李沂)·윤주찬(尹柱讚) 등도 가담하였다. 거사는 원래 2월 13일로 계획되었으나 몇 차례 연기되어 3월 25일에야 실행되었다. 나인영과 오기호 등은 궁궐 앞 길목을 지키다가 이완용 등을 처단하고자 하였으나 경비가 삼엄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이홍래·강원상(康元相) 등의 결사대는 사동(寺洞) 입구에서 군부대신 권중현을 공격하였으나 부상만 입혔다. 이에 나인영과 오기호가 거사의 정당성을 담은 자현장(自現狀)을 가지고 평리원에 나가 자수함으로써 자신회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평리원에서 10년의 유배형(流配刑)을 받고 전남 지도군(智島郡)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다. 1909년 이상설(李相卨)이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는 국내 대표로 김진구(金鎭九)와 함께 선정되었다. 이상설이 극비리에 여비를 보내어 중국 상하이(上海)로 나오도록 촉구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연금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1991년 후손들이 영천시 신녕면 신덕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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