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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金秉鉉

188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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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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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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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이재명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출신이다. 이재명은 1908년 11월경 일진회(一進會)가 ‘한일합방’을 주창하며 성명서를 공포하고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이 대한제국과 일본이 합방할 협약을 체결할 것을 예상하고, 이 기회에 그를 처단하기로 하고 동지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동년 11월 하순부터 평양에 가서 12월 상순까지 박태은의 집에서 김정익·이동수·전태선·이응삼 등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가입을 권유하였다. 김정익은 한·일 합방의 주창자인 일진회장 이용구(李容九)를 처단하자는 의견을 내었고, 이완용·이용구 두 사람도 동시에 처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태은 등도 그 의견을 찬성하여 이후 여러 번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재명과 이동수·김병록 등은 이완용 처단 임무를, 김정익과 조창호는 이용구 처단 임무를 담당하기로 협의하였다. 박태은은 오복원·이응삼과 함께 거사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의 임무를 담당하였고, 전태선은 거사에 사용할 권총을 빌려 경성으로 운반하는 책임을 담당하였다. 조창호는 김병현과 이학필에게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진회장 이용구 등을 사살할 때 필요한 단총을 빌려오라고 하였다. 이들은 거사에 필요한 운동비를 적극적으로 주선하는 한편, 평소 친분이 있던 김이걸에게 단총을 의뢰하였다. 김이걸은 자신의 친척인 이국필에게 단총 한 자루를 빌려와 조창호를 통해 이재명에게 제공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이재명은 12월 23일 오전 11시경 이완용이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하러 명동 천주교회당에 가는 것을 탐지하고, 이동수와 같이 단총과 단도를 휴대하고 교회당 문 앞에서 기다렸다. 이완용이 추도식을 끝마치고 인력거를 타고 되돌아갈 때에, 옷 속에 감추어 두었던 단도를 꺼내어 이완용의 왼쪽 어깨 부위를 찔렀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붙잡혔고, 이동수와 조창호는 도피하였다. 이재명의 이완용 처단 의거에 참여한 인물들은 대부분 붙잡혔다. 주범인 이재명을 제외한 연루자와 혐의자는 모두 25명으로, 연루자 13명 중 이학필과 정창호, 이동수는 도주 중이었으므로 체포된 10명만이 1909년 5월 1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제1차 공판에서 김이걸·이학필·조창호·전태선·김병서와 친한 사이고, 박태은은 다만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주장하였다. 권총을 빌리려고 조창호와 함께 이학필의 집에 갔고, 조창호가 이완용·이용구는 매국노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일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조창호가 편지하여 김이걸에게 권총을 구해서 보내라고 하였다. 그래서 김이걸에게 “악한 놈이 동쪽에서 와서 삼천리 국토가 침몰한다”라고 편지하였고, 의논할 일이 있으니 서로 만나자고 하였다. 검사는 박태은·전태선·김용문·이응삼·김이걸 등과 함께 주범을 방조한 자로서 운동비, 흉기, 동정을 탐지하는 등의 일을 분담하여 거사에 참여하였다고 논고하였다. 이에 따라 1910년 5월 18일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그러나 혐의자로 지목된 임치정·양한묵·오상준·최진현·이교담·송종원·안태국·지인서·정의도·송인섭·이재순·김용석·지석규 등 13인은 불기소로 처리되었다.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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