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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金鳳奎

1892. 8. 20 ~ 196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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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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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慶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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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의령사건’
  • · ‘제2경북중대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2년 8월 20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양북면(陽北面) 나정리(羅亭里, 현 경주시 감포읍 나정리)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중에 3·1운동에 참여한 뒤, 1920년 봄부터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령을 받고 파견된 송두환(宋斗煥)과 함께 군자금 모금을 위해 국내로 들어온 같은 고향 출신 김종철(金鍾喆)의 권유를 받고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송두환·김종철·최해규(崔海奎)·정동석(鄭東錫) 등과 함께 경남 합천군과 의령군의 부호를 상대로 군자금을 모금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1920년 12월 6일 김종철과 함께 송두환이 건네준 권총 1정과 예경령(預警令) 1매를 휴대하고, 합천군 상백면 평조리의 정달락(鄭達洛)을 찾아가 군자금으로 1만 원을 요구하였다. 정달락이 당장 가진 돈이 없다고 거절하며 40원을 제공하자 이를 수령하였다. 이어 7일 김종철과 함께 권총을 소지하고 사전에 군자금 의연을 약속한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 남연구(南延九)의 집으로 향하였다. 오전 11시경에 도착했으나 남연구가 외출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였다. 2시 무렵이 되자 남연구의 밀고를 접수한 의령경찰서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순사 손기수(孫騏秀)가 들이닥쳐 주재소로 동행을 요구하였다. 연행당해 가던 중 산길에 이르러, 김종철은 총을 꺼내 일본인 순사를 향하여 3발을 쏘았다. 일본인 순사는 즉사하였고, 조선인 순사 손기수도 중상을 입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현장을 벗어났으나 1923년 11월에 그 일로 붙잡혔다. 재판에 회부되어 1924년 11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 형(미결구류일수 90일 본형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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