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섭
金鳳燮1893. 10. 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용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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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1893년 10월 9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원탄면(元灘面) 마산리(馬山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음)8월경 강동군 원탄면 봉도리(鳳島里)에 있는 김동현(金東賢)의 집에서 김봉원(金鳳源)의 권유로 김순록(金淳錄)·김국록(金國祿)·김태린(金泰獜, 이명 金泰麟)·왕기서(王基西) 등과 함께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하였다. 의용단은 중국 상하이(上海)에 본부를 둔 독립운동 단체로 의용단 장재부장(掌財部長)이었던 김순일(金淳一)의 부하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한국이 독립을 위해 먼저 친일파와 밀정 등 독립운동 방해세력을 제거와 함께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이후 각각 권총과 실탄을 건네받고 같은 해 11월 하순부터 동지 2명 내지 4명이 1조를 이루어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1920년 11월 대동군(大同郡) 시족면(柴足面) 운곡리(雲谷里) 강소사(康召史)의 집에 들어가 현금 30원을 모집하였다. 이후 11월 30일 같은 마을 박덕승(朴德承)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려다가 도둑으로 오인한 동네 주민들의 소동으로 실패하였다. 그해 12월 25일에는 자신이 살던 마산리에 거주하는 김영린(金永獜)에게서 500원을 모집하려다 실패하고 군자금 제공을 약속받았다. 이후 1921년 1월 1일 김순록·김봉원·김태린과 함께 시족면 운곡리의 김응천(金應天, 일명 金奎天)에게 45원, 이어 박덕종(朴德鍾)에게 40원을 모집하였다. 또 1월 27일 밤 강동군 고천면(高泉面) 동서리(東西里) 김석영(金錫泳)의 집에 들어가 아들 김제준(金濟濬)에게서 현금 14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던 중 일제의 밀정 김원봉(金元鳳)이 의용단원들의 군자금 모집 사실을 알고 일제 경찰에 고발하였다. 이에 1921년 1월 29일 김봉원·김태린 등과 함께 친일파와 밀정 처단에 대해 논의한 후, 다음 날인 1월 30일 강동군 고천면 도덕리(道德里)에 있는 김원봉의 집을 기습하여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같은 해 2월 2일 동지들과 함께 강동경찰서에 붙잡혔다. 1921년 8월 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가택침입, 강도죄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24년 징역 7년 6개월로, 1927년 징역 6년 5개월 25일로 각각 감형을 받았다. 1928년 2월 10일 경성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이후 생계를 위해 강동군에 있는 남경탄광(南京炭鑛)에서 갱부 십장(什長)으로 일하였다. 또한 동네 삼성학원(三成學院) 위원 등이 되어 청소년 교육에도 힘썼다. 정확한 사망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른 기록에 의하면 1932년 2월 26일에 탄광 갱내(坑內)의 천장이 무너져서 사망하였다. 향년 42세였는데, 당시 신문에서는 ‘13년 전인 기미년 때부터 평남 일대에서 비호장군(飛虎將軍)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10년 동안 철창생활을 한 인물’로 소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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