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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金鳳洙

1913. 3. 2 ~ 1980. 3. 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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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寶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보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위친계
  • · 전남노농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전남노농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3년 3월 2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보성면(寶城面) 보성리(寶城里)에서 태어났다. 1929년 3월 보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32년 2월 이후 김기수(金麒洙)·최장춘(崔長春) 등과 교류하여 지도·감화를 받고 전남노농협의회(勞農協議會)에 참여하였다.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항일의 내용이 담긴 격문을 인쇄하여 국내 일원에 배포하다가 붙잡혀 1932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33년 2월 문남일(文南一)과 함께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하는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할 목적으로 보성군 보성면 우산리(牛山里) 김계수(金桂洙)의 집에 모여 위친계(爲親契)라는 결사를 조직하였다. 운동방침으로 (1) 양계·양돈을 그 수입으로 공산주의 잡지를 구입하여 돌려 읽을 것, (2) 회원에게 수시로 강의하여 계급의식을 주입할 것을 합의하고 그해 11월까지 계속하였는데, 문남일이 일본으로 가자 해산되었다. 한편 보성면 보성리 박준봉(朴準奉) 외 10여 명을 위친계에 가입시켜 김용덕(金容德) 외 여러 명에게 2회에 걸쳐 한국은 사유재산제도라서 무산자는 유산자로부터 항상 압박·착취를 받고 있지만, 소련은 생산기관을 공유하며 생산물을 평등하게 분배하여 빈부와 계급이 없으니 단결하여 소련과 같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공산주의 의식 주입에 힘썼다. 1933년 11월에는 우산리 김계수의 집에서 임병주(林秉周)의 권유로 임병주가 설립한 보성면 보성리의 농민야학에서 홍일식(洪一植) 등 수명의 학생에게 계급의식 교육을 하였다. 이처럼 동지를 규합하고,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위한 전단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재차 붙잡혔다. 1933년 10월 중순 기관지 『기관농민시보(機關農民時報)』를 발간하고 서당을 설립하여 사상 전파를 기도하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1934년 10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1934년 12월 26일 집행유예는 취소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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