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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화

金奉和

1882. 6. 23 ~ 1919.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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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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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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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82년 6월 23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좌면(左面) 대포리(大浦里)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기화(基和)이다. 1918년 10월 7일 법정사 항일운동에서 선봉집사의 역할을 맡아 거사에 참여하여 지역 주민을 지휘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의 주도 인물들은 1914년경부터 법정사에서 법회를 통하여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일제 국권피탈의 부당함을 인식시키고 있었다. 1918년 4월경에 법정사 주지 김연일(金連日)·강창규(姜昌奎) 등 승려들은 법정사 인근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항일운동의 거사를 합의하였다. 7월경부터 거사에 사용할 격문과 몽둥이·깃발 등을 제작하고 화승총을 준비하였다. 격문에는 독립을 위해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고 원래의 한국 시대로 회복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법정사 항일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한 후 9월 14일부터 말일까지 주도 인물들과 함께 마을에 배포할 격문과 몽둥이 등을 만들었다. 법정사 항일운동의 총지휘자는 김연일이었다. 조직은 좌대장과 우대장을 두어 활동하였다. 거사 현장은 행동부 선봉대장이 이끌었고, 선봉대장과 함께 앞장서 참여자들을 이끌 선봉집사·선봉좌익장·선봉우익장 등을 두었다. 이 중 선봉대장 휘하의 선봉집사를 맡아 선봉대장을 도와 거사를 지휘하였다. 거사에 참여하는 지역 주민을 가운데의 중군대장이 이끌고 대열의 후미에 후군대장을 두어 거사 참여자들을 관리하려는 조직을 구성하였다. 1918년 10월 5일과 6일의 정례예불일 법회에서 주지 김연일의 항일운동 실천 의지를 전달하고 거사의 목적이 국권 회복에 있음을 알리고 협력을 구하였다.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로 조직된 선봉대가 강창규 이하 행동부의 지휘를 받으며 지역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10월 7일 새벽 거사의 성공을 위한 기도를 마친 후 선봉대장의 지휘 아래 선봉대 34명의 일원으로 서귀포를 향해 출발하였다. 사전 제작해 두었던 깃발 6개와 화승총 3자루·몽둥이 수십 자루를 나누어 휴대하였다. 미리 제작해 둔 격문을 집집마다 배부하며 참여를 이끌었다. 각 마을 이장들로부터 민적부를 받아 이를 토대로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하였다. 법정사를 출발한 시위대열은 제주도 영남리·서호리 등을 거쳐 중문리까지 행진하였다. 중문경찰관주재소에 다다른 700여 주민들은 경찰관주재소의 기물과 문서를 부수었고 강창규는 주재소 지붕에 불을 붙여 건물을 불태웠다. 11시경에 서귀포경찰관주재소의 기마 순사대가 총을 쏘며 진압을 시작하자 시위대는 천제연 부근에서 흩어지고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66명이 형사사건 대상자로 조사를 받았다. 일제는 제주도 내에도 제주지청 검사분국이 있었음에도 사건을 동급기관인 목포지청 검사분국으로 이송시켜 조사할 정도로 법정사 항일운동을 중요시하였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김현일·강창규 등 46명과 함께 재판받았으며,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하던 중 1919년 12월 1일 대전감옥에서 옥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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